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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Nov 02. 2020

책으로 마스터한 육아

엄마의 자격

삭막한 도심 한가운데에도

어느덧 늦가을이 내려앉았다.

운전 중 우연히 바라본 풍경 속에는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자 아이와

그보다 더 어린 남자아이 하나

그리고  엄마

이렇게 세 명의 가족이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낙엽과 어우러져

행복한 웃음을 연신 터뜨리고 있었다.

딸아이와 떨어진 벚꽃을 모아 바람에 날리던

먼 기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었기에

딸아이가 태어나고도

어른들의 조언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시어머님이 계셨지만 신경을 써 주신다 한들

마음이 힘들기는 매 한 가지였다.

어떻게 애를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어머님께 편히 할

정신 나간 며느리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딸아이의 육아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은

백과사전처럼 생긴 육아서 덕분이었다.

그 책은

친구가 출산 한 달이  나를 보러 오면서

자기 언니가 보고 도움이 되었던 책이라며

내게 선물 가져온 것이었다.

경미한 산후 우울증세로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

그런 과장된 두려움 속에 지내던 간들,

젖을 먹일 때면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 자그마한 생명을

내가 키울 수나 있을까 하는

별의별 부정적인 생각만 들던 그때,

그 책 만난 것은 마치 

복 불가능의 상황에서

명줄을 붙잡은 것과  느낌 이상이었다.

아이가 큰 탈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청소년으로 자란

요즈음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책 선물을 받은 그 날부터 육아서를 붙들고

법학 전공자답게 마치 고시 공부하듯

육아의 바다에서 난파당하지 않도록

미지  

텍스트로 하기 시작했다.

연필로 일회 독,

옅은 하이라이트로 2회독,

더 진한 하이라이트로 3회독을 거듭하면서

육아 바보의 머리

마치 회독수를 거듭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던 법학 공부의 효과처럼

육아계가

점차 뚜렷 자리잡는 것 느졌다.

예방접종이며,

모유 수유며, 

변의 색깔에 따른 건강상태하며

많이 울고

거의 모든 시간을 등에 업혀 있으려던

딸아이와 같은 예민한 아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등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적혀  있었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곳곳을 찾아

동그라미, 별표, 당구장표 등을 해나

해결책을 모색했다.

17년 전의 그 책을 얼마 전 책장 구석에서 꺼내보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이만저만해도 어쨌든 참 다행이었다.'

나지막이 혼잣말이 다.


어느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으랴.

임신 확인과 기간을 알아보기 위해 간 산부인과에서

 " 어머님" 하는데

난,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주위를 둘러보았을 정도다.

얼마나 어색하던지,

서른 넘긴

속은 여전 아이였던

외향만 어른인 내가 거기 있었다.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해

친정과는 연락이 끊어진 데다

딸이라서 차별받았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침잠된 세월이 오래 쌓인

상처 많은 이 그대로였던 그때 내게

어머니라는 호칭은

먼 외계행성어 정도로 들을 정도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딸이  만 한 살이 될 때까지

거의 한 몸처럼 붙어 지냈다.

특별히 예민했던 딸아이를

포대기 둘러 등에 업고서

그대로 엎드려 선잠을 많이도 잤다.

시댁 문턱을 밟으면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아는지,

대신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여지없이 터뜨리던 딸이다.

많이 울던 아이와 어쩔 줄 몰라하던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리던 남편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

딸아이가 고등학생인 지금까지도

부부싸움의 단골 메뉴다.

그만큼 내게 사무치는 기억이라는 의미다.

지금은 전세 역전으로

아이 옆에 있고 싶어 하는 아빠를

저리 가라고 딸아이가 밀어낸다.

그러면 남편은  딸에게

 "넌 왜 엄마만 안아주고 아빠는 차별해?"

라며 섭섭해 하지만,

 '그러게, 좀 잘하지'라는 말이

내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는다.


독박 육아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24시간을 아이들을 위한 돌봄 노동에 있다 보면

제 아무리 바다같이 깊은 마음의 소유자 할지라도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성격을 발견하 

자괴감에 빠진다

요컨대,

우아한 육아란 없는 것이다.

어느 연구 결과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이 출산 후 만 3년의 기간이

여성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라는데 입을 모은다.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자신을 부수고

새로운 터 위해 로운 자신으로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던 아티스트가

엄마가 되고 나서 출연한 방송에서

'육아는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이라고 했다.

과연,

그녀는 진짜 온 마음으로

육아에 힘써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내 모습이 참 많이도 변했다.

점심 청국장에 소주를 곁들여야 하는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이들을 눈물 흘리게

난처한 질문을  것이

멋진 인생인 줄로만 알았던,

패기 넘쳤지만 실상은 미성숙했던 

젊은 날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소위 세대가 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전복적인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던 시간

딸이 자랐고

한 손에 안고 목욕시키던 아기가

나와 같은 사이즈 속옷을 입는

청소년으로 자랐다.

영혼을 갈아 넣은 육아라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끝없는 변신을 주저하지 않았다고는

고백할 수 있다. 

우울의 정서를 가지고 있

정기적으로 펑펑 울어줘야 살아갈 수 있었던 내가

딸아이를 위해 목소리도 한 톤 업시켰고 

전혀 어울리지 않던 생기발랄함을 쥐어 짜내느라

제법 능청맞고 주책스러워졌다.

거의 하지 않던 말 너무 많이 게 되자

"그만 , 거기까지!"라는 태클을 딸에게서 받을 정도다.

동화구연을 위해 몸 사리지 않는 열연을 꽤 오래 했던 탓에

가끔 나도 내가 싫어질 정도의

어리광 비슷한 것을 시연해

가족들을 민망케 기 일쑤다.

전두엽이 폭발하는 사춘기 딸아이의  업다운에

흔들리지 않는 엄마의 멘탈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많 '부모되기' 공부를 했는지 모른다.

평균인이 생각하는

표준에 가까운

혹은 통상적인 마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때마다 읽은 책도 상당하다.

수많은 엄마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으리라.

아이가 자라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책도 있는 것처럼

육아는 온 마음을 다해 전력 질주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영역이다.

자신을 무너뜨 그 곳에

완전히 다른 자신을 세워야 하는 큰 변화다.

적응 시간 결코 녹록지 않다.

어쩌면 자녀라는 인격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너무나 중요한 일 

엄마되기,

아빠되기,

'부모되기'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전의 자신이 부서을 통과하면서

많이 아프 하고 주저앉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전의 나를  떠나 보내고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려고 애썼다면

그것으로

엄마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 시간을 지내온 이들은

당신의 그 아픔을 안다.

그러니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자.

예전과는

좀 다르

덜 우아하

조금 털털하게

아니 덜 예민하고 유치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의 그 애씀은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답고 멋지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도 될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보여 준

전적인 ,

한치의 의심없는 신뢰라는

경이로운 관계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자녀들을 통해

충분히

위로받았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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