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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May 18. 2023

오십 살, 생각보다 다르지 않더라

멈추자 보이는 풍경들 2.0

얼마 전 경미한 사고로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최소한으로

전화 통화하는 것조차

꼭 필요한 정도로만 하는 등

일상의 모든 장면들에 변화가 생겼다

목과 허리 통증이 계속되었고

머리는 온종일 안개가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듯

지독한 두통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몸은 꽤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내게

감당할 수 없는 휴식이 주어지는

인생의 다른 국면이 펼쳐진 시간이기도 했다.


사고의 여파로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된 일상에 서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크게 본 모습은

50이  아닌 척 서 있던

50살이 된 나였다.

나이가 아니라는 듯

애써 부인하며

한계용량 이상의 짐을

양손에 힘겹게 들고 있던 나.

혹여 그 짐들을 내려놓으면

50이라는 나이에 지는 것만 같아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고 있던 한 사람.

그러나 실상은

그닥 세지도 않은 타격 한 방이면 자빠지기 직전이던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자기 삶도 버거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타인들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상처 입은 치유자로의 역할을 감당한답시고

위태롭게 서 있던 한 사람

그 속은,

서울로 떠나버린 딸아이가 없는 부산이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느껴져

아이마냥 눈물바람을 해대는

빈 둥지 증후군을 심각하게 통과 중인

중년의 엄마였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혜롭고 통 큰 엄마를

그저 흉내만 내고 있던

여리디 여린 한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50이 되어도

나는 그닥 변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만날 날을 손꼽으며

눈물 흘리고

오만가지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어떻게 하면 전화 통화를 할까 궁리 중인,

그런 여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꽤나 험한 인생을 살았노라 하며

그닥 요동치 않는 강건한 사람인 줄

나조차 나를 오해하고 있었던 차에

사고로 인해 스스로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청년의 어느 때처럼

사랑하는 사람만 골똘히 생각하기에

사랑하는 딸이 사는 곳의 날씨를

매일 체크하는 것으로

나름의 위안을 삼고,

필요 없다는 먹을거리를

굳이 쿠팡 로켓배송으로 시켜

너에게 내가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는,

이전과 똑같이

'사랑함'로 살아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생의 한 고비를 넘은 듯 느껴지는

오십 살이 된 지금도

내 영혼이 뿜어내는

애틋함

그리움

상실과 슬픔의 스펙트럼은

청년의 그 때와

똑같은 절절함이 투사되고 있었다


오십 살

생각보다  다르지 않군.

뭐지?

이 당황스러움은.

도대체 얼마나 더 나이가 들어야

삶에 담담한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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