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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Jan 15. 2024

어린이 집에 가기 전, 빨간 립스틱을 바릅니다

1분 남짓.


아침에 내가 옷 입고 머리 빗고 얼굴에 로션 바르는 일련의 외출 준비시간은

1분이면 된다.


그전에 수많은 과정들이 있다.

아이들 아침 준비하고 깨우고 먹이고 가방 준비하고 이불정리하고 입을 옷 준비하고

다 먹이면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 입히고 머리 빗겨 얼굴에 로션을 발라준다.


그리고 난 후 드디어 내 옷을 입고 

현관으로 튀어나가 애들 신발 신긴 후 

어린이집으로 간다


신발 신는 것을 제외한 모든 준비를 아이들이 마치면

나는 찰나에 준비하여 집을 떠나는데

그래서 옷은 거의 유니폼처럼 정해져 있다


몇 벌의 바지와 몇 벌의 티를 가장 꺼내기 쉬운 곳에 배치하고

돌려가며 오늘의 유니폼을 입듯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옷을 입는다

그 몇 벌의 바지와 티는 매일 입어도 티 나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과 무난한 색을 골라놓는다

그리고 양말을 신고 점퍼를 입으면 끝이다.

어쩔 때는 정말 머리도 안 빗고 나갈 때도 있고

진짜 급할 때는 양말도 안 신고 나갈 때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나를 봤는데

얼굴은 거칠하고 입술은 검푸르고 머리는 헝클어져 

내가 나를 보고 놀랐다.

와 진짜 이건 사람 몰골 아니다.

누군가 마주칠까 너무 무섭다. 

아 이 꼴로 그동안 아이 친구들 엄마도 보고 선생님 얼굴도 봤구나 


그래서 요즘은 얼굴에 로션을 펴 바르고 팩트를 몇 번 팡팡 두드리고 

빨간 립스틱을 입술에 슥슥 바른다. 아 입술이라도 붉은색이어야지 

이제 쌩얼은 남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것을 나 스스로가 자각하여 반성하고 

그나마 로션, 팩트, 립스틱 요 3가지라도 예의를 차린다. 그렇지만 이것도 다해야 30초나 될까? 


아무도 나에게 시간을 제한하거나 꾸미지 말라고 질타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선택.

내가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들은 애써 입혀놓은 잠바나 양말을 벗어버리고 이것저것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 아침부터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니까

그래서 나의 준비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일이 늘어날 뿐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됐다.

그렇다고 불만이 많다거나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병원에서 검사 차 피를 뽑을 일이 생겼다.

간호사님이 내 손 여기저기 살피며 채혈할 곳을 살피는데

자연스레 내 손과 내 손을 잡은 간호사님의 손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간호사님의 손이 너무 까칠해 보였다. 더러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곳도 있고

건조하고 벗겨진 큐티클이 많아 손이 참 건조해 보였다.

속으로 '아.. 핸드크림을 좀 바르시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그동안 아침에 나를 본 누군가도 나를 보고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으려나

'입술이라도 좀 빨갛게 바르면 생기 있어 보일 텐데'

'이런 날씨엔 검은색 옷이 아닌 좀 화사한 색을 입어도 좋았을 텐데'

'아침에 너무 바쁘셨나 보다 거울 볼 시간이 없으셨나 보네'

어쩌면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뜨끔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이 꼭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나를 돌보지 않고 왠지 나를 관리함에 있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너무 나를 내팽개치고 애들 챙기는데만 급급했어하는 자책도 함께

거울 속 나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한껏 꾸미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나 스스로 나를 자주 봐주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잘 입히고 단정하고 예쁘게 해 줘야겠다

다짐해 본다.


옷 한 벌 살까? ㅎㅎ



오늘의 수다거리

등원할 때 엄마의 외출준비 시간은 어느 정도 되시나요?

매일같이 예쁘게 꾸밀 수 없겠지만 그래도 신경 쓴 티가 나려면 뭘 하면 좋을까요?

본인을 예쁘게 꾸밀 줄 아는 엄마,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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