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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Feb 26. 2024

"엄마 편하려고  어린이 집에 가는구나"

느긋한 성격이 아닌 나는 아침부터 "빨리빨리"와 "서둘러"를 한 100번쯤 말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밥 먹을 때도 양치할 때도 옷 입을 때도

한 번도 아니고 한 번에 한 3번은 연거푸 외치며

어디 출전이라도 하듯 아이 등을 떠밀며 등원 준비를 한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썰물처럼 빨려 들어가듯 몸을 담고 내려가고 있는데

어느 층에선가 할머니 한분이 타셨다.

할머니께서는 어린이 집 가방을 메고 똘망똘망하게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귀여우셨는지

말을 거셨다

'아이구 어린이 집 가는구나~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큰 가방을 메고 고생한다~"

안쓰럽다는 듯이 둘째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시고는

"엄마 편하려고 어린이 집 가느라 니들이 참 고생한다"


엥??? 엄마 편하려고???

갑작스러운 전개에 나는 당황했고 이렇다 말도 못 하고 지하 1층에 당도해서 내리긴 했는데

찜찜한 마음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고 "뭐지?" 황당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앞서 가시는 할머니를 붙잡고 "제가 편하자고 애들 어린이 집 보내는 건 아니고요~~ " 라며 변명과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상황.

그냥 누군가가 한 말이라며 잊어버리자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들과 차에 올라탔다.

그렇지만 할머니 말씀이 하루종일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나 편하자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잠에서 깨우고

잠에서 덜 깬 체 식탁에 앉혀 꾸역꾸역 밥을 먹이고

부리나케 준비해 어린이 집에 보내는 걸까?

나 편하자고?


냉정하게 곱씹어 생각해 보니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내가 편한 것은 사실이다.

애들을 보낸 후 늘어지게 잘 수 있고 커피도 여유롭게 한 잔 할 수 있어서?

아니, 그건 아니다.


아이들을 보낸 후 정해진 일정을 수월하게 털어낼 수 있다.

여타 집안일, 장보기, 해야 하는 일정들을 아이들과 같이 하는 건 노고가 배로 들어간다.

아이들까지 신경 쓰지 않고 해야 하는 일정들을 쉽고 빠르게 털어낼 수 있어서 참 편하다.


공부도 할 수 있고 나를 챙길 여력도 생긴다.

실로 나는 아이들 어린이 집 보내고 평생학습관 수업 등을 이용해 원하는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나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고 내 커리어도 만들고 싶다.

하루에 겨우 한두 시간이지만 이 시간들을 잘 활용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운동도 한다. 올해는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2~3번이지만 운동을 한 것과 안 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체력이 필수니까. 어떤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야겠다는 필요성은 해가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다.

점심도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천천히 음미하며 즐겁게 식사한다.

이건 정말 내가 누리고 있는 호사 중에 호사다.

늘 식사 메뉴는 아이들 위주로 선택을 하고 아이들 먹이고 나 먹으려면 늘 급하게 맛도 모르고 그저 끼니 거르지 않기 위해 하는 식사일 뿐인데 아이들 어린이 집에 보내고 혼자 식사를 하면 혼밥이긴 하지만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내가 아이들 밥을 차리지 않아도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서 영양소가 균형 있게 들어간 식사를 할 수 있어 안심이다. 물론 급식으로 나온 밥을 모두 골구로 다 잘 먹는 전제 하이지만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 집에서 나온 음식들을 아주 맛있게 다 먹어주는 아이들이라 걱정이 덜하다. (게다가 오전 오후 간식까지 챙겨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일도 할 수 있다.

작년부터 소일이지만 조금씩 일을 해서 돈을 벌기도 한다. 뭐 월급이라 말할 수도 없는 금액이지만 경력단절 7년 만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일이었고 나도 돈을 벌 수 있어 참 좋았다. 그저 주부가 아닌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커리어도 계속 쌓을 수 있는 것은 어린이 집 아니고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어린이 집은 나의 제일가는 육아메이트이다.

나에게는 도움을 줄 친정 식구도 시댁 식구도 없는 터라 유일하게 내 육아를 도맡아 주고 대신해 주는 곳이다.

만약 어린이 집을 보내지 못했다면

그래 나는 지금처럼 편할 수도 어떤 일을 하기도 꽤 힘들고 어려웠을 테지

그러니 그 할머니 말씀은 맞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가서 내가 편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할머니께는 직접 말씀 못 드렸지만

엄마가 편하자고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 둘 다 돌이 되자마자 어린이 집에 보냈다.

혹자는 아이들이 36개월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보살피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나는 돌이 되자마자 어린이 집에 보내서 36개월까지 엄마가 보살피면 어떤 것이 좋은지 실제로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엄마의 사랑을 더 듬뿍 받을 수 있어서?

엄마들이 더 잘 알겠지만 아이를 많이 사랑한다고 해서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계속 아이와 붙어 있으면 엄마는 나날이 지친다. 회복할 겨를도 없이 아이에게 매달려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 결국은 아이를 잘 돌볼 힘도 없어지게 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꼭 어린이 집이 아니더라도 육아는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육아의 노동을 함께 나누고 아이의 발달과 정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누군가가 꼭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집에 일찍 보내면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전염병에 노출될 환경에 많이 접하게 되어 더 자주 더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로 우리 아이들은 감기도 엄청나게 걸렸고 첫째 아이는 수족구를 연달에 3번 걸려 발톱이 빠진 지경까지 간 적도 있었다. 둘째 아이는 한 달에 감기약을 안 먹는 날이 일주일 정도나 될까? 정말 자주 아프고 콧물을 달고 산다.

아프면 일주일씩 가정보육을 하며 아이를 집에서 봤다. 외출도 안 하고 찬 바람도 안 쐬고 늘상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감기가 나았느냐?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내 경험상 집에 있다고 금방 감기가 나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게 모든 환경을 내가 최적화로 만들 수도 없는 셈이고 아이들이 많이 뛰고 활동량이 많아야 더 건강해지는데 늘상 집에 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은 뭔가 배우고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엄마표 영어, 엄마표 미술놀이 등등 집에서도 물론 많은 활동을 아이와 할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나는 꾸준히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성실함도 없고 아이가 즐겁게 뭔가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기술도 없다. 미술놀이도 치울 거 생각하면 시도조차 힘겨워하는 엄마라 내가 집에서 뭔가 아이에게 해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만 아이가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게 이곳저곳을 데려가는 일은 잘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매일매일 어딘가로 데려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 집은 정말 손쉽게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어린이 집마다 다르지만 특별활동을 통해 체육, 미술, 음악, 영어 등 다양한 활동을 매주 꾸준히 한다. 우리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은 한 달에 한 번 동물 친구들이 찾아오는 '쥬니멀' 활동이 있다. 가까이에서 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아이들이 흥미롭고 좋아한다. 첫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은 한 달에 한 번 '숲 체험'이라는 활동이 있다. 근처 공원에 가서 나무의 종류 나뭇잎의 생김새 열매의 모양 등도 배우고 숲에 사는 작은 동물 친구들이 누가 있는지도 공부하고 이런 동물 친구들과 공존하며 잘 살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여러 가지 활동들을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내가 어린이 집에 보내면서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어린이 집에서 교우들과 또 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어떤 대화와 행동을 해야 하는지 배운다. 또한 어느 집단에서 정해진 규칙과 역할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지킬 수 있는 힘도 배운다. 가족이 아닌 여타 다른 집단에 속해 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는 이유이다.

물론 어린이 집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다쳐오기도 하고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걱정과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아니다. 너무 일찍부터 집단생활의 규격화와 일관성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에서 오는 근심과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더 될 것인가 실과 이득을 따지고 나의 아이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리라.


여튼 할머니께 하고 싶은 말은 결단코 엄마가 편하자고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말씀은 마음속에 아껴두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첫째 아이가 지난주에 어린이 집 졸업을 했다. 첫째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 아이를 2년 연속 담임하셔서 나만큼이나 우리 아이를 잘 알고 세심하게 돌봐주셨다.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잘 돌봐 주실 것을 믿고 있었고 그래서 아이를 맡기고 편하게 내 볼일과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 포옹을 하는데 벅차게 눈물이 났다.

6살 7살 우리 아이의 모습을 저만큼이나 많이 보고 기억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우리 선생님이시고 저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어주셨는지 모릅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현아^^ 도현이가 어린이 집에서 엄마 없이도 잘 생활하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잘 지내줘서 엄마가 정말 고마워~ 6년 동안 4군데 어린이 집을 다니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고 수고했어~ 어린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도현이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사랑해~




오늘의 수다거리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툭 내뱉은 말에 상처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아이를 어린이 집(혹은 유치원)에 보내고 어떤 일들을 하세요?

어린이 집(혹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때 걱정되는 것 있으세요?

어린이 집을 졸업하는 자녀분께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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