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 별 Feb 19. 2024

엄마를 속이려는 아이에게

첫째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고 

생일인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받아왔다.

대게 답례품은 소소한 군것짓거리가 포장지에 담긴 것인데

그 안에는 과자도 사탕도 젤리도 있다.

이 달에 생일자는 두 명이었는데 그래서 첫째 아이는 답례품을 2개 들고 왔다.


갑자기 군것질거리가 가득 생기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두 손에 들고 와 막 자랑을 한다.

그리고는 포장지를 막 뜯어 어떤 군것질들이 들어있는지 보고

자신의 방에 갖다 두려고 했다.

하원하고 집에 오니 저녁 6시이고 이제 곧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군것질을 먹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많은 군것질 거리를 아이 방에 두어 언제든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을 수 있게 두고 싶지 않았다. 

겨울이라 야외활동이 적어지고 요새 부쩍 살이 쪄서 배가 살짝 나온 터라 며칠 전 아이에게 군것질을 좀 줄여야겠다고 얘기했었다. 

그 뒤로 간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과자나 젤리 대신 견과류나 치즈, 과일 같은 것으로 주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며칠 멀리하던 간식이 갑자기 많이 생기니 더 먹고 싶어 했고 챙기고 싶어 했다.

그걸 알지만, 쌀쌀맞은 것도 알고 있지만 저녁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나는 아이에게 답례품을 뺏아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오늘은 저녁 먹고 이건 내일 먹자"

하고 아이를 보는데 아이 두 손이 등 뒤로 가 있는 게 보였다. 

"손에 뭐가 더 있어?"

하고 물으니 천천히 뒤에 있는 손을 가져와 핀다.

손 안에는 나에게 건네지 않은 초콜릿 과자가 있었다.

숨겨두고 나 몰래 먹으려다가 들켜서 아이 얼굴에 당황함+속상함이 비췄다.


그래도 본인이 받아온 선물인데

통째로 가차 없이 뺏어버린 게 나도 조금은 미안해서

"그럼, 이거 동생 모르게 너 혼자 방에서 먹어. 이것만 먹고 저녁 먹자~"

내 얘기에 아이가 신이 나 쏜살 같이 자기 방에 들어갔다.

그래 초콜릿 과자 하나쯤이야... 저녁 먹는 데 큰 무리도 없고 저거 하나로 속상함도 달랠 수 있겠지.


그러고는 저녁을 하기 위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둘째 아이가 빨리 나오라고 내 손을 잡아끌어 서둘러 나오게 되었다.

그때 첫째 아이가 식탁 의자에서 뛰어내려 빠르게 자기 방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수상했다. 

답례품을 올려 둔 곳은 식탁 옆 수납장 위였기에 단번에 아이가 그것 때문에 식탁 의자 위로 올라갔다고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첫째 아이를 불러 내 앞에 세웠다.

아이는 아까와는 다르게 손이 뒤에 가 있지 않고 차렷 자세였다. 

"갑자기 식탁 의자 위에는 왜 올라간 거야?"

아이는 우물쭈물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례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

라고 말했다. 

아이는 말간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했지만 

당당하게 차렷자세로 움찔하지도 않았지만

두 손을 꽉 쥐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손 펴봐."

아이는 살짝 주먹을 쥐었던 손을 폈고 그 안에는 사탕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순간.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웃기지도 않았다.


만약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그랬다면 나는 아마도 가볍게 웃어넘겼을 것이다

"에구...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엄마 모르게 재빨리 식탁 의자로 올라가 사탕을 꺼내 방으로 도망치는 것까지.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방문 안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 들켜버린 그 아이를 어쩌면 나는 '에구 안타깝다. 아깝다. 아쉽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내 아이다. 

나는 이 아이의 엄마라 엄마를 속이려 한 이 아이를 그저 귀엽게 사소한 에피소드로 쉽게 없던 일로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냥 불러 세우지 말 것을. 손을 펴보라고 하지 말 것을.

아니다. 이 아이에게 다시 똑같은 일을 또 하게 둘 수는 없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고 아이에게 말했다

"도현이가 더 먹고 싶었구나? 그럼 엄마한테 더 먹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엄마가 안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음번엔 엄마한테 한 개만 더 먹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먹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사탕을 먹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말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아이의 눈엔 눈물이 조금 고였고 사탕을 가지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도 내지 않았고 격양되어 당황한 채 장황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으니 됐다.

적어도 아이에게 왜 엄마를 속였냐고 화내고 싶지 않았다. 속이는 행동은 정말 잘못한 일이라고 꾸짖고 다시는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를 속이면서까지 사탕을 먹고 싶어 한 그 아이를 무안하고 죄책감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다음번에 같은 일이 생기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엄마를 속이며 먹어야 하는 일이 아님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목적은 이룬 거 같은데.... 그래도 속이 상했다. 조금 서글펐다. 슬펐다.

아이가 누군가를 속여야 하는 대상이 엄마인 내가 되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아이에게 있어 거짓말을 하고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 속여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대상이 어쩌면 엄마인 내가 가장 많지 않을까.... 속여야 하는 대상 1 순위가 엄마인 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슬퍼졌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혹은 엄마한테 혼날까 봐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간 것들, 사소하게 한 거짓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건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엄마를 믿지 않아서도 

엄마를 만만하게 생각해서도

그런 게 아니니까.


그러니 그냥 '도현이의 사탕 사건'이라는 작은 에피소드로 이 일을 묻어버리려고 한다.

아이가 크는 과정이려니 생각하자.




오늘의 수다거리

거짓말을 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훈육하시나요?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이의 거짓말을 모르는 척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요?


이전 14화 부모는 기다려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