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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14. 2023

<딱궁이> 일기예보

소서(小暑)호, 둘째 주


에세이 - 일기예보


    오랜만도 아니고 딱 한 달 만에 다시 본가로 왔다. 나와서 산 지 5년이 넘었어도 부모님을 뵈러 가는 건 두 달을 넘기지 않는다.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서라도 매달 찾아간다. 혼자 살기 전에 노래를 불렀던 배달 음식은 몇 달 주구장창 먹으니 질려버렸다. 그렇다고 요리를 해 먹자니 영 귀찮아서 끼니를 위한 노동은 조리까지만 한다. 배달 음식이 질리고, 조리도 하기 싫을 때 나는 완성된 반찬들을 꺼낸다. 다 본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엄마나 아빠도 아닌 할머니 표인 경우가 더 많다. 본가에서는 식량도, 익숙함도 채울 수 있다. 나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도 자주 외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걸 완벽히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의 냄새를 꼭 맡아야 한다. 우리 엄마 냄새가 그렇다. 예전에 매일 붙어있을 때는 그게 내 냄새인 줄 알았다. 연인이든 친구든 부모님이든 떨어져 봐야 그리운 줄 아는 것처럼.

   오늘 내가 본가에 온 이유는 여느 때와 다르다. 나는 내일 결혼을 한다.


   이십 대 때는 결혼이 대체 왜 필요한지 잘 몰랐다. 혼자서도 잘 살았고, 이성의 사랑은 연애로도 충분했다. 재정 상태는 또 어떠한가. 글을 써서 버는 돈은 누구와 함께 먹고 살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현실을 잘 알고 있어도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는 데에는 그렇게 커다란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다. 말이 없고 재치를 모르는 나의 옆에서 웃음을 까먹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리 상상해도 나의 애인이었다.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랑이 아까울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우리는 각자 자취를 하다 함께할 집을 구했다.


   예비 신혼집은 애인의 본가와 더 가깝다. 그래서 애인은 자신의 본가에서 저녁만 먹고 우리의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돌아간다’ 라는게 오늘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청탁 받은 원고를 해결하느라 본가에 일찍 도착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이미 저녁을 먹은 뒤였다. 결혼식이고 뭐고 당장 엄마가 해주는 오징어볶음, 꽁치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예비 신부라면 당연히 다이어트하는 거라고. 전날이니 빡세게 굶어야 한다고 말했다. 샐러드라도 먹으라는 엄마 말에 대충 얼버무렸다.


   결혼 안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애가 어떻게 된 건가 몰라.

   그니까. 우리 이모들이 더 뜯어말렸었는데.


   우리는 거실에서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잠에 들었다.서로 진지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나의 우울이 신입이었을 때를 지켜본 천장과 마주하고 누웠다. 결혼이라는 게 행사일 뿐이지 그렇게 거대한 일은 아니잖아. 그래도 막상 코앞에 다가오니 조금 무섭다. 서른을 넘기고도 내일 다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잠이나 잘 수 있을까 했던 밤이 빠르게 지나고, 먼저 채비를 마친 애인이 데리러 왔다. 나는 평소보다 더 말 수가 적어졌다. 긴장과, 걱정과 눈물이 계속 뒤섞였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애인은 조용히 손을 잡아주며 얘기했다. 둘이 잘 살아볼 테니 한번 지켜보쇼. 말하러 가는 것뿐이야.


    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애인과 갈라졌다. 본식이 시작돼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완벽히달랐고, 준비 시간도 사뭇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둘 다 결혼은 형식적인 곳에서 하기 싫다고 했지만 사실 마땅히 다른 길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경로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해주는 분들을 따라가며 결정만 하는 게 확실히 편하다.

   드디어 그 시간이 왔다. 눈물이 고이기 전에 눈을 자주 깜빡여야 하는 시간이다. 본식만큼이나 긴장되기도 하다. 이제 신부 대기실에서 나를 축하해 주러 오는 사람들을 반겨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가족을 제외하면 올 지인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몇 명 없는 친구들과는 이미 오늘이 오기 전에 한 번씩 거하게 울고 웃고 했다. 내가 편지, 축가를 부탁한 친구 둘은 몇 주 전부터 맹연습 중이라고 했다. 식장에 비슷하게 도착했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걸 보니 다들 리허설 중인 것 같다. 먼저 결혼한 나의 절친은 자신이 가방순이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며 발 벗고 나섰다. 마지막으로 축의금은 내가 제일 신뢰하는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만약 축의금이 구멍 난대도 이 친구들이라면 아깝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을 함께한 가족들, 친지들을 한 분씩 반겼다. 이제야 어른이 조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찌질이 울보 본성이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 입장할 때 웃음 못 참으면 어쩌냐고 걱정했었는데. 웃음은 무슨. 남편의 잔뜩 경직된 표정을 보니 귀엽기도 하고 꽤 믿음직스러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한 손에는 드레스 자락, 한 손에는 아빠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간다. 나는 아빠가 세 명이다. 나의 출생과 함께 멀어진 아빠, 아빠가 왜 필요한지 모를 만큼 나를 사랑해 주신 할아버지. 비로소 내게 아빠가 왜 필요한지 인정하게 해준 아빠. 총 세 명의 아버지를 두었다. 처음에는 신부 입장을 다 같이 하는 건 어떤가 싶었다. 엄마가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그게 뭐냐고 기겁을 할 것 같아서 말은 안 했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지금의 아버지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고집으로 세 분을 엄마 바로 뒤쪽에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했다. 신부 입장 곡, 친구들이 불러대는 내 이름이 들린다. 세상에서 가장 떨렸을 때가 첫 출판을 위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훨씬 더 떨린다. 다른 파트가 이제 막 열리는 느낌이다. 엄한데 억울히 팔려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곧 씩씩해졌다. 남편의 손을 잡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 섰다. 손에, 얼굴에, 땀이 삐질삐질 난다.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나 잘 살 수 있을까. 하면서도 정말 잘 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든다. 노을같은 사랑을 하며 꼼꼼히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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