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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17. 2023

<딱궁이> 몽상(夢想)

소서(小暑)호, 셋째 주





에세이 - 몽상(夢想)


* 사진 텍스트가 편하신 분들은 제 인스타그램에서

편집된 원고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


https://instagram.com/wwwonseona?igshid=MjEwN2IyYWYwYw==



    개꿈이거나, 태몽이거나, 기분 좋은 꿈이거나, 실제로 겪었던 일 혹은 겪을 일. 이런 것들로 판별할 수 있다면 특징이 있는 꿈이 되겠으나, 꿈은 사실 잠에서 깬 후 빠르게 증발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분명 꿈을 꾼 것 같은데 너무 빠르게 사라져 긴가민가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종종 같은 꿈을 꾼다. 벌써 세 번째 정도 됐다.  이 꿈이 나타나는 주기는 꽤 긴 편에 속한다. 하지만 잠에서 깨면 바로 알 수 있다. 이전에 꿨던 꿈이라는 걸 단번에 안다. 그리고 그 꿈은 빠르게 휘발되지 않는다.


     같은 꿈(한 번도 겪지 않은 일임을 가정하고)을 자주 꿀 때, 내가 두 명이라는 상상을 한다. ‘여기의 나’와 ‘저기의 나’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여기’의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저기’의 나는 ‘여기’ 있는 내가 꿈에서만 볼 수 있다. 그쪽도 ‘여기’의 나를 꿈에서만 볼 것이다. 우리는 이름, 얼굴, 성격 모두 똑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잊지 않아야 할 기억을 반대편의 나에게 마치 클라우드처럼 저장해둔다. 잠을 자는 것은 우리의 공유 경로다. 이 경로를 통해 기억을 ‘꿈’화 시켜 전달한다. 나는 ‘저기’의 나에게 세 번 정도 중요한 기억을 전달받았다.


    장면은 책장이 즐비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창문이 없거나,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마치 대형 회사의 한 층을 전부 만화방이나 서점으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도 아닐 수 있지만 빼곡히 책이 들어찬 책장들이 정말 높고, 많다. 공간의 4면 중 내가 서 있는 기준으로 오른쪽 벽면 자체가 통창이다. 옆 건물이 바짝 붙어있다. 바깥에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층인 듯하다. 해가 저물고 있다. 빨간 색에 가까운 짙은 주황색이다. 따라서 계절은 가을로 추측해본다. 카운터로 보이는 공간과 회색 출입문은 나란히 붙어있다. 문 앞에 신발 벗는 곳이 따로 있다. 나도 신발을 벗고 있는 것 같다. 만화방이나 서점이라면 카운터에 사람이 있어야 할텐데. 앉아있는 사람도, 돌아다니느 사람도 없다. 여기에는 나를 제외한 누구도 없다. 파리 날라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얄팍한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책장 사이에서 휴대폰을 들고 책을 찾는다. 휴대폰 화면이 점점 더 밝아진다. 내부가 분 단위로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자꾸 초조하다. 계속해서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책을 하나 집어 든다. 펼쳐서 내용을 살핀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 책을 다시 꽂아두고 또 무언가를 찾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 카운터 쪽으로 걸어간다. 사무용 유리 책상이 보인다. 유리 안쪽에는 몇 번이나 구겨지다 물기에 글자가 번져버린 종이가 끼워져있다. 닳아버린 지 오래지만 더 이상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뒤늦게 끼워둔 것 같다. 종이에는 <마지막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적혀져 있다. 무언가 이곳을 마감하기 위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런데 손님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사람이라 적혀서 조금 이상하다.


   ‘1. 불 끄기.’


   넓은 창 때문에 몰랐는데 내부에 불이 얄팍하게나마 켜져 있었나 보다. 책상 근처를 살피다 하얀색 스위치를 찾았다. 불을 끄니 완벽하게 어두워졌다. 여태 혼자였다는 게 의식되는 어둠이었다. 작은 소음에도 쉽게 놀라기 시작했다. 천장이 높아 소리가 크게 울렸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앞쪽을 밝혔다. 보이는 건 빼곡한 나무 책장들이다. 그 사이에 뭐라도 있을까 봐 괜히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하지만 불빛이 움직일 때마다 식은땀이 나길래 관뒀다.


   ‘2. 문은 밖에서 열쇠로 잠그기. 열쇠는 책상 밑 서랍에 꽂혀있음.’


   두 번째부터는 행동을 서둘리 했다. 뒤통수가 자꾸 저릿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상 밑 열쇠를 빼자마자 뛰다시피 신발장으로 향했다. 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신발은 한 켤레뿐이었다. 발을 대충 욱여넣고 문을 열었다. 폭탄이 터지는 큰 소리가 났다. 내가 문을 너무 세게 닫은 탓이었다. 문을 잠그려는데 열쇠가 계속 들어가질 않아 당황했다. 긴장감은 공포가 되었고, 공포는 내게 조급함을 주었다.


    ‘3. 열쇠는 지하 1층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여직원에게 전달. 에스컬레이터 이용.’


   공간 밖으로 나오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적힌 대로 얌전히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뿐인가. 하는 사이 지하 1층에 도착했다. 컴퓨터가 한 20대 정도 되는 것 같다. 정말로 그중 한 개의 컴퓨터만 켜져 있고, 한 명의 여직원이 보였다. 그쪽으로 빠르게 걸어가 푸른색 파티션 너머로 열쇠를 건넸다. 여직원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열쇠를 낚아챈다.


      이 꿈을 반복해서 꿀 때마다, 모든 과정과 느낌은 한 번도 다른 적이 없었다. 나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그리고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앞서 말했던 나의 가정대로라면, 꿈속 상황은 ‘저기’의 나에게 정말 중요한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의 내가 글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꿈을 사용한 이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더라면 하는 마음이다. 만약 다시 이 꿈을 꾼다면 그때는 ‘저기’의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다. ‘여기’의 내가 꿈을 직접 구현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비슷한 장소를 찾아내서, 추측했던 계절이 오면, 가장 유사한 색깔을 내는 시간대에 맞춰 갈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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