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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12. 2023

<딱궁이> 일흔의 외출 (2)

소서(小暑)호, 둘째 주

 


<희곡> 일흔의 외출 (2)



- 세복 (70)

- 명애 (65)

- 아주머니 (56)

 

 



세복

나 어렸을 때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었거든. 지금 말이면 노예지 노예. 머슴살이하면 먹고 재워준다길래.그렇게 돈 벌어서 살았는데. 그렇게 평생을 살아서 그런가 멈추는 법을 모르겠어.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썅…. 뭘 해야 할지 모르 겠다고.

 

 

   씁쓸한 얼굴의 세복. 술을 마신다. 아주머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피운다. 다시 한번 벨 소리가 울린다.

 

 

세복

(휴대폰 화면을 슥 쳐다보고) 아따. 여편네. 자꾸 전화질이네 그냥.

 

아주머니

어우. 좀 받으셔. 사모님한테 얘기 잘 해요. 적당히 마시고 들어갈 때 연락하겠다고.

 

세복

내가 미쳤어? 무슨 지겨운 소리를 또 들으려고. 됐어. 저러다 제 풀에 지치고 말지.

 

 

   벨 소리가 끊긴다.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으쓱하는 세복.

 

 

아주머니

안주 다른 거 드릴까요? 오징어만 먹었더니 입이 짜네.

 

세복

아줌씨가 술을 안 먹어서 그렇지. 더 먹을 거 있슈?

 

아주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과일 좀 썰어 올게요. 참외랑 감 같은 거.

 

세복

좋지. 포크 말고 요지.

 

 

   세복은 잔을 다시 채운다. 잠잠해진 휴대폰을 괜히 만지작거린다. 옆에 둔 조끼 주머니에 통장이 잘 들어있는지 확인도 해본다.

 

 

아주머니

(카운터 쪽에서 세복을 잠깐 쳐다보며) 사모님한테는 말해봤어요?

 

세복

(하던 걸 멈추고 아주머니 쪽을 쳐다본다.) 뭘 말해?

 

아주머니

사장님이 방금까지 얘기한 거요. 지겹다느니, 모르겠다느니.

 

세복

하이고. 말해서 나아질 것 같았으면 진작에 나아졌겠지. 아줌씨랑 만 날 일도 없었겠고. 단골이 되지도 않았을 거야. 나를 돈 벌어오는 머슴이라고 생각하는 여편네한테 말하긴 뭘. 차라리….

 

 

   말하던 도중 다시 벨 소리가 울린다. 화면을 확인한 세복. 벨 소리가 멈춘다.

 

 

세복

…여보세요.

 

명애

뭐여. 받은 거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세복

계속 안 받는 사람한테 전화는 뭐 하러 자꾸 해.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과일을 들고 나온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테이블에 안주를 조용히 내려두고 다른 테이블로 걸어간다.

 

 

명애

전화를 왜 자꾸 하냐고? 내가 안 할까 그럼. 너 나가서 엄한 여편네 돈 떠먹여주고 있는데?

 

세복

돈을 떠다 맥이긴 누가 돈을 맥여. 술 마시고 얘기하러 온 거지.

 

명애

얘기 좋아하시네. 꼬박꼬박 나가서 백날 얘기만 하느라며칠씩 안 들어와? 네 돈 다 거기에서 쓰잖아. 아니야? 새빠지게 일해서 번 돈 마 누라한테 쓸 생각은 안 하고 자꾸 엄한 데다 쓰잖아 네가.

 

세복

시팔. 야. 넌 말을 왜 그렇게 하냐. 돈을 네가 벌어? 내가 벌지. 난 그냥 술도 마시고 겸사겸사 얘기도 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라고.

 

명애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받아서 거기다 푼다고. 나 참 이해가 안 되네. 야. 나는 네가 진짜 답답해. 너 내가 뭐 물어보면 나한테는 한 마디 도 안 하잖아. 근데, 거기서는. 어. 얘기가 술술 나오나 봐. 막, 여자 가 술도 따라주고 비위 맞춰주니까 말하는 재미가 생기디?

 

세복

(아무 말 하지 않고 술을 마신다.)

 

명애

기껏해야 너 가는 데가 시장 바닥인데. 웬 다방에서만 돈이 그렇게 찍히는 거야. 네가 쓰는 카드 내역이 나한테 다 문자로 와. 전화하기 싫어도 하게 만든다고. 웃겨. 지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인지 나한테는 왜 말을 안 해주고 애먼 데서 풀고 있냐고. 나 참, 답답해서. 너 그리고….

 

세복

….

 

명애

(잠시 망설이다가) 그 아줌마 결제할 때. 네가 카드만 꼴랑 주고 확인 안 하지? 너 그거 진짜 호구 취급받는 거야. 알어? 맹추같이 술만 퍼마시는 놈이라서. 일부러 따블로 결제하는 거라고. 등신 천치 같은 네가 피땀 흘려 버는 돈! 다 그렇게 나가는 거라고!

 

 

   세복은 자신이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걸 명애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세복

….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명애

어떻게 아냐고? 내가 왜 몰라. 지나가는 개도 알겠다. 어. 애초에 시장 바닥에서 나올 가격이 아니야. 내가 예전에 그 다방, 너 찾으러  갔던 것도 까먹었지? 아이고. 등신아. 아이고…. 나는 정말 답답하다. 답답해. 네가.

 

 

   전화가 끊긴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아주머니는 멀리서 세복의 눈치를 본다.

 

 

아주머니

사모님이 뭐라셔요?

 

세복

(헛웃음을 지으며) 몰라. 시팔. 내가 답답하다네. 스트레스 받는 걸 왜 자기한테는 말을 안 해주냐고.

 

아주머니

(세복의 옆으로 다가오며) 사모님 입장에서는 또 그럴 수 있지. 사장님 이 얘기를 안 해주니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세복

그리고 여편네 생각해서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일이 더 커진 것 같어. 나만 꽉 막힌 놈 된 것 같고 그러네. 부러 말 안 한 건데. 그걸 알고 있더라고. 쪽팔려서 원.

 

아주머니

말 안 하신 게 뭔데 그래요?

 

세복

(술을 마시며) 거봐. 아줌씨도 모르는데. 이 여편네는 왜 알아버렸나 몰라.

 

 

   다방 쪽 조명이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테이블에 엎드려있는 세복. 아주머니는 세복이 앉은 테이블 주위를 정리한다. 한숨을 연거푸 내쉰다.

 

 

아주머니

사장님. 사장님! 이제 가보셔야죠. 어휴. 이걸 혼자 다 드셨어.

 

세복

(몸을 뒤척이며 엎드린 상체를 일으킨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휴…. 계산해 주쇼. 여기.

 

아주머니

(카드를 받고 카운터로 향한다.) 괜찮겠어요?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세복

…. 나는 그래도 여기서 술 마시는 게 좋았수.

 

아주머니

(단말기에 카드를 꽂으려다 멈춘다.) 예?

 

세복

따블로 긁혀도 그러려니 했다구. 여기 말고는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줌씨는 이게일이잖어. 그러려니 했다고 내가. 그동안 고마웠수. 덕분에 회포 잘 풀었어.

 

 

   아주머니는 아무 말 하지 못한다. 멈춘 아주머니는 고민한다. 다시 세복에게 향한다.

 

 

아주머니

(카드를 건넨다.) …. 오늘 치는 안 긁었어요.

 

세복

(조끼의 지퍼를 잠그며) 거 몇 푼 한다고 오늘 걸 안 받어. 아무튼. 잘 지내쇼. 나는 이제 여기 안 올 수 있을 것 같어.

 

 

   세복은 카드를 받고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아주머니는 나가는 세복을 쳐다본다. 뒤이어 다방 쪽 조명이 꺼지고 세복이 있는 중앙에 조명이 집중된다.

 

 

세복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고, 만져본다.) 차 키…. 지갑도 여기 있고. 가만 있어 봐. 핸드폰은 어디에 뒀더라. 핸드폰……. 여기 있구먼.

 

 

   세복은 휴대폰을 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울린다. 이내 신호음이 끊기고 정적이 흐른다.

 

세복

(객석을 바라보며) ……. 나 좀 데리러 와.

 

 

   무대는 천천히 암전 된다.





*


   가까운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히려 나를 잘 모르는 사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때 후련해지는 경우가 있다. 세복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전화하는 사람) 통해 외로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복은 끝내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이 희곡은 결국 가까운 사람과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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