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선아 Jul 11. 2023

<딱궁이 합동 연재 1>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소서(小暑)호, 둘째 주


특별 코너 <이거 내 이야기는 아니고>


* * * * *

첫번째 합동 원고의 답장 원고

에세이  -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글쓴이  - 원선아

* * * * *



     희망온도 22도, 비가 오면 제습으로 여름을 매번 무사히 보낸다. 나가서 활동하는 날에 하필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어도 괜찮다. 어딘가에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카페 혹은 대형 쇼핑몰 센터도 좋다. 나의 일상에서는 날씨를 대비할 수 있다. 겨울은 어떤가. 난다 긴다 하는 외투들이 쏟아진다. 아톰이 신을 것 같은 방한 신발들도 이제는 패션이 되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자랐고, 산다. 하지만 이제 그림자를 봐야 한다. 시원한에어컨 뒤의 실외기를 보아야 하고, 전기장판 밑을 들춰봐야 하는 것이다. 날씨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 세상이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것처럼 매섭게 뜨겁고, 아프게 서늘하다.


   재난의 정의는 이렇다.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서 태풍(颱風)·홍수(洪水)·호우(豪雨)·폭풍(暴風)·폭설(暴雪)·가뭄·지진(地震)·황사(黃砂) 등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환경오염사고 등 이와 유사한 사고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와 전염병 확산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말한다. 재난이라 명할 수 있을 정도의 피해가 꼭 ‘자연현상’과 ‘사고’ 혹은 ‘국가기반체계’ 등으로 인해 발생해야 할까. 의문이 생겼다. 세상에는 정의할 수도 없고, 피하지도 못하는 재난이 더 많다. 빚, 가난, 지병과 같은 것이 그렇다. 최악을 막기 위해 그나마 덜 악한 길을 선택한다. 불행은 찾아오지 않은 행복을 기대하며 막는 게 아니다. 덜 불행한 불행으로 메꾸는 것이다. 개인이 겪는 불가피한 재난은 세습되고, 세습된 재난을 겪으며 새로운 개인에게 세습시킨다.


   내가 목격한 재난은 세운상가에 있었다. 세운상가에는 2,3층에 사람들이 먹고 즐길 수 있는 편의시설이 들어와있다. 나 역시 그곳에 육천 원이 넘는 수박 주스를 마시러 갔다. 종로 근처를 자주 돌아다녔어도 세운상가에는 들어와 본 적 없었다.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건지 이미 건물 곳곳에 사람들이 많았다. 날이 많이 습하고 더워서 다들 어딘가로 빨리 들어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수박 주스가 유명한 카페는 만석 직전이어서 못 앉을 뻔했다. 대부분 연인, 가족들이었다. 주말을즐기는 과정에 세운상가가 포함된 것이다. 분명 카페에들어왔을 때 무척 시원했는데, 내부 사람들의 열기 때문에 다시 더워지는 것 같았다. 수박 주스를 최대한 천천히 마셨는데도 금세 빈 통이 되었다. 에어컨의 한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오자고 생각했다.


   육교처럼 생긴 세운상가는 양옆에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카페 문을 나서자마자 증기 같은 열기 때문에 모공이 열리는 듯했다. 계단을 내려오면 건물 밑에 여러 철물 상가들이 입점되어 있다. 종로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상가들은 대부분 주말에 꼭 쉰다.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되나 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내 눈이 으슥한 계단 밑을 향했다. 주황색 뚜껑의 작은 음식물 수거통이 보였다. 그 앞에 허우대가 멀쩡한 남성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남성은 중년에서 노인으로 넘어가는 듯한 나이대 같았다. 뚜껑이 열려있는 수거통에는 음식물이 먼 거리에서도 보일 만큼 쌓여있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남성은 입을 우물거린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수거통 속 음식물을 골라 먹는 중이었다. 내 시선은 3초도 머무르지 않았다. 무릎을 치면 다리를 뻗는정도로 반사적인 순간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 처음 본 장면인데 그동안 내가 일부러 모른 척한 것만 같은 당혹감. 어차피 사 마실 건데 비싸서 놀랐던 수박 주스, 한기를 느끼면서도 덥다고 예민해졌던 나의 기분까지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제정신을 한순간에 빼앗기고 카페로 돌아갔다. 블렌더에 수박 가는 소리, 시끄러운 곳에서 말하느라 더 시끄러워지는 사람들 속에 섞였다. 모두가 늘 하던 일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이전 02화 <딱궁이> 손에 락스 냄새가 배서 엄마 생각이 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