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小暑)호, 첫째 주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로 화장실 청소란 걸 처음 해봤다. 써본 적도 없는 남자 소변기를 구석구석 닦으며 생각했다. 남의 돈 벌기 정말 성가시다. 일하던 카페에서 주말마다 화장실 청소를 했어도, 우리 집 화장실은 한 번도 청소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씻을 때 유독 오래 걸리던 덕분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렸다. 점점 변기와 세면대에 물때가 눈에 보일 정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 우리 집 유한락스에 손을 댔다. 스프레이를 구석구석 뿌려대는데 자꾸 락스가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이상하게 분사력이 좋지 않았다. 성질이 나서 계속 손잡이를 눌러댔다. 뿌리기 전에 열림 쪽으로 돌려서 써야 했는데 그걸 모르고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에 락스 냄새가 잔뜩 뱄다. 냄새는 손을 몇 번이고 씻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핸드워시나 주방 세제로도 소용없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나, 나는 엄마다. 우리는 발바닥, 팔목의 점까지 똑같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힘들면 내가 힘든 것 같았고, 엄마가 울면 나도 눈물이 났다. 누가 엄마를 막대하기라도 하면 마치 내가 그런 대우를 받은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지고 울렁거렸다. 내가 스마트폰 대신 아이리버 MP3를 쓰던 시절에 우리 가족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아파트 살던 내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디지털카메라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놀았는데 엄마가 대뜸 장난을 쳤다. 엄마는 카메라를 가져가 웃긴 표정을 지으면서 혼자 사진을 찍더니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유머러스한 엄마로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마구 웃으며 좋아했다. 어린아이를 웃기는 건 이렇게 간단하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며 웃어대는 친구들에게 화가 났다. 엄마의 사진이 웃음거리가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몇 분을 울었다. 내가 오랜 시간 나오지 않자 먼저 노크를 한 사람은 엄마였다. 선아야. 엄마가 친구들 재밌게 해주려고 그런 거야. 누구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없는 나이에도 나는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아이가 듣는다. 내가 해봤던 자는 척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엄마와 모텔에 갔을 때다. 모텔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처음 가봤다. 사람들이 그곳에 뭐 하러 가는지도 몰랐을 만큼 어렸다. 나의 조부모가 집안 물건을 던져대며 다툴 기력이 있던 옛날이다. 그때 엄마와 함께 잠깐 집을 나섰다. 우리는 세트라서 그렇다. 휴대폰과 충전기, 혹은 담배와 라이터 같은 사이다. 떨어졌다가는 한쪽이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엄마는 나를 지켜주기 위해 데리고 다녔고, 그런 엄마를 지켜주고 싶은 나는 꼬박 따라나섰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특권인 듯 이용했고, 그래서 엄마는 자주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른들의 일은 알아도 몰라야 했다. 그 사람들을 몰래 미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락스 냄새가 나는 모텔에서 엄마는 휴대폰이 울려도 무시하다가 중간중간 전화를 받았다. 자는 척이 들통날까 긴장해서 질끈 감은 눈이 떨렸다. 그 와중에 낯선 침대가 이상하게 편안했다. 이렇게 쿰쿰한 곳에 엄마를 혼자 두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서 우리는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엄마는 밥을 먹다 말고 또 전화를 받았다. 이제 집에 가자. 엄마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매일 콩나물국밥을 먹어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