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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10. 2023

<딱궁이> 누군가에게는 내가 자라지 않는다

소서(小暑)호, 둘째 주




에세이 - 누군가에게는 내가 자라지 않는다



   ‘사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팔다리가 길어 어떤 옷이라도 수선이 필요 없다. 땡볕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피부는 금방이라도 보디빌딩 대회에 나갈 것처럼 검다. 갈증은 물 대신 막걸리로 해결하는 버릇이 있고, 흔들리는 이빨은 화장실에서 혼자 뺀찌로 뺀다. 내가 이만큼 자랐어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나보다 키가 크다.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최신형을 선호한다. 새로 나온 휴대폰, 새로 나온 냉장고, 그게 아니라면 원하는 것 중에 제일 비싼 제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떠한 유행이라도 휴대폰에 제일 빠르다. 쓰던 휴대폰의 할부는 거의 채운 적이 없다. 저번에도 할아버지는 삼성의 폴더형 스마트폰이 나오자마자 바꾸러 갔다. 하지만 끝내 작동법에 익숙해지지 않자 또 다른 최신 기종으로 바꿨다. 나는 이런 성격의 이점만 누리며 자랐다.


    내가 목도 가누지 못할 때의 첫 장난감은 자동차였다. 트램펄린 위에 붙은 자동차 장난감이다. 아마 그 당시 최고 인기 장난감이었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침흘리개 갓난쟁이에게 인형 대신 자동차 장난감을 사줬을 리 없다. 태어나자마자 최신형의 호사를 누렸다. 출처는 우리 발 빠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태어난 병원에서 제일 우량아였던 나를 장난감 자동차에 눕듯이 앉혔다. 무거운 머리가 자꾸 핸들 쪽으로 꾸벅거렸다. 이를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질세라 안방에서 베개를 가져왔다. 나의 등 뒤에 베개를 두고 비스듬히 만들어 핸들과 사이를 가깝게 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내 책상 밑에 있다.


    초등학교 입학 기념 첫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 새 신발, 새 옷은 모두 덕이동 로데오 거리에서 샀다. 당시 제일 인기였던 것들로만 가졌다. 역시 할아버지 덕분이다. 지금도 할아버지는 시장 속 정신없는 신발들 틈에서 하필 발렌시아가 디자인을 고른다. 친구들이 아직 가지지 못한 휴대폰도, 컴퓨터도 모두 나한테는 있었다. 언제나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엄마도 아니고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그러면 그걸 꼭 갖게 됐다. 더 이상 갖고 싶은 걸 사달라고 하지 않게 된 건, 돈은 땀 흘려 벌어야 생긴다는 걸 알게 된 이후였다.


    결코 모험적일 수 없는 나이의 할아버지는 공룡 같은 차를 몰고 다녔다. 차가 곧 직장이고 재산인 일을 한다. 할아버지의 직업은 정화조 청소업자다. 어떤 연고도 없는 건물들의 전화를 받고 하수구를 살피어 돈을 번다. 아주 옛날에 할아버지를 따라나선 적이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보조 의자에 앉아서 일반 승용차들의 정수리를 보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궂은 만큼 아무도 쉽게 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가다 인간 흉내를 내는 인간들의 홀대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 할아버지가 청소를 시작하면 나는 주로 그 근처를 구경했다. 그날따라 나는 차에서 꼼짝 않고 할아버지만 봤다. 청소를 의뢰한 사람이 할아버지 뒤에서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서 있었다. 다른 쪽 손으로는 지폐 몇 장을 쥐고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거운 것들이 내는 굉음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정화조 차의 호스가 하수구 속부터 요동치며 움직였다. 할아버지는 손과 목에 핏대를 세우며 힘겹게 호스를 잡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환불해서 할아버지에게 돈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요즘 휴대폰에 관심이 없다. 해가 질 듯 말 듯 망설여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잔다. 할머니랑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도 줄어들었다. 정화조 차의 에어컨은 그동안 몇 번이고 고쳐 썼는지 이제 수리해도 소용이 없다. 전자랜드나 하이마트 대신 약국 쇼핑을 즐긴다. 이제 나는 할아버지에게 막걸리를 사다 줄 수 있다. 장난감이 필요 없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 갖고 싶은 걸 적절히 포기할 줄 알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나이가 됐다. 애교도 무엇도 없어진 나는 가끔 할아버지께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 저 아구찜 먹고 싶어요. 짤랑거리지도 않을 만큼 꽉 찬 저금통같이 사랑을 받아두고 어떻게 할 줄 몰라 한다.


     저번달에 작다면 작은 수술을 앞두고 입원을 하게 됐을 때였다. 수술 전날, 할아버지에게 메시지가 왔다.

    선아야고생해선아수술끝나면할아버지가선아조화하는것사줄께선아사랑해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언제나 재빠르게 눈물 흘리는 아역배우가 된다. 수술이 무서워서 우는 것처럼 울었다.

    다음 날, 무사히 회복실에서 병실로 돌아왔을 때에도 메시지를 받았다.

   선아수술잘되어서고마위그동안걱정많이했지이재선아퇴윈하면할아버지가선아재일조아하는것사줄께몸조림잘하고있서선아사랑해

   하지만 이제 나는 제일 좋아하는 것을 돈으로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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