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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12. 2023

<딱궁이> 일흔의 외출 (1)

소서(小暑)호, 둘째 주






희곡 < 일흔의 외출 > (1)

 


 

- 세복 (70)

- 명애 (65)

- 아주머니 (56)

 

 

 

 

*

 

   무대 우측, 식당 테이블이 두세 개 놓여있다. 우측 뒤편에는 카운터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 좌측에는 상점 간판들이 붙어있다. 하림 로고가 그려진 거북정육점, 낙원떡집, 중앙상회 등. 좌측에서 등장하는 세복. 바지 벨트 두르는 곳에 차 열쇠가 달려있다. 작업복으로 추정되는 투박한 옷차림.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걸쳤다.

 

   무대 좌측 간판에 불빛이 들어온다. 세복은 테이블을 향해 걸어간다.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아주머니. 들어오는 세복과 눈이 마주친다.


세복

(장난스러운 말투로) 혼자 뭘 또 맛있게 잡숴.

 

아주머니

(휴지를 몇 장 뽑아 입 주변을 닦으며 일어난다.) 맛있기는. 밥때 놓쳐서 겨우 먹어요. 이거 중앙상회에서 사 온 건데. 한 그릇 하실겨?

 

세복

(의자를 손으로 쓸고 앉는다. 크게 숨을 뱉으며) 됐수다. 어제도 거기서 순대국 먹었어. 오늘은 짝태 있나 짝태?

 

아주머니

(세복 옆에 서서) 밥은 집에 가서 드셔야지. 짝태…는 없고. 대명항 서 사 온 오징어는 어때요.

 

세복

(조끼를 벗어서 옆 의자에 둔다.) 아니 뭔 놈의 짝태는 어떻게 올 때마다 없어. 오징어 줘요 그럼. 마요네즈 말고 고추장 해가지구.

 

아주머니

(물을 가지러 카운터 쪽으로 간다.) 그래도 막걸리는 넉넉하게 채워 놨슈. 날도 선선한 게 오늘 뭔가 오실 것 같더라고.

 

세복

(멋쩍게 웃으며) 내가 언제 날씨 푹하다고 안 왔나? 근데, 나 오늘은 막걸리 안 마실 건디.

 

아주머니

(물을 테이블에 놓아주고 가려다 멈추며) 예? 아니. 뭔 일이래요. 장수 막걸리를 장수할 것처럼 드시던 분이.

 

세복

(한숨 쉬며 컵에 물을 따른다.) 시팔 몰러 그냥. 내 맘이 내 맘 같지가 않어.

 

아주머니

얼레리. 별일이 다 있네. 그럼 오리지널로?

 

세복

(무대 옆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에에? 아니지. 아줌씨. 장사 안 혀 장사? 저어기 비싼 술은 다 꽁쳐두고 누구한테 팔라고.

 

아주머니

얼씨구. 사장님, 오늘 날 잡았네. 알았어요.

 

 

   아주머니는 다시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 뒤편에 쭈그려 앉아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아주머니.

 

 

아주머니

(작게 속삭이듯) 야. 정화조 사장 왔다. 아니 오늘은 막걸리를 안 찾 더라니까. 어어. 에이씨. 바쁘기는 뭐가 바빠. 너네 가게 손님 없는 거 아는데. 빨리 와. 우연히 들른 척해라?

 

 

   조심스레 전화를 끊는다. 고개만 쭉 빼고 세복의 눈치를 살핀다. 아무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단팥빵을 집어 세복에게 간다.

 

 

아주머니

(단팥빵을 건네며) 기다리실 동안 좀 드시고 계셔요.

 

 

   세복은 단팥빵 포장지를 뜯어 한입씩 먹는다. 이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다.

 

 

세복

(휴대폰 화면을 보고 중얼거린다.) 참…. 쯧. 지 급할 때만 찾지 아주.

 

아주머니

(세복 쪽을 힐끔 돌아보다 큰 소리로) 전화 안 받아유?

 

세복

(빵을 먹으며 중얼거린다. 아주머니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시펄…. 허구한 날 남의 똥 푸러 다니면서 돈 벌면 뭐 하나.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고.

 

아주머니

(더 큰 소리로) 아유, 사장님! 사모님이 걱정하겄어! 빨리 받아요!

 

세복

냅둬! 썅. 안 받아도 돼. 분명 통장 갖고 나갔냐고 물어보는 거야.

 

 

   계속 울리던 휴대폰 벨 소리가 끊긴다. 준비한 안주를 들고 나오는 아주머니. 다른 한 손에는 양주병을 갖고 온다. 양주는 몇 번 먹은 흔적처럼 윗부분 양이 조금 줄어있다.

 

 

아주머니

(안주와 술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려다가 돌아간다.) 잔. 잔을 안 가져왔네. 가위는?

 

세복

(오징어를 손으로 벅벅 찢는다.) 됐슈. 손으로 찢어 먹어야 맛있지. 아, 얼른 와 앉어유. 손님도 없구만.

 

아주머니

(잔을 갖고 세복 맞은편에 앉는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방금 사모님 전화 아닌가? 밖에 나오기만 하면 전화를 안 받으셔 왜.

 

세복

(양주 병을 열다 말고 아주머니에게 넘긴다.) 내가 괜히 안 받겠어? 시펄. 돈 얘기만 하니까 그렇지. 그 사람은 통장 찾는 거야 통장. 내가 연신 조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까.

 

아주머니

(세복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그거야 가만있던 통장이 없으니까 그렇죠. 집에다 둬야 할 걸 들고 다니시니까.

 

세복

(술을 한 번에 털어 넣는다. 인상을 찌푸리며) 어유…. 독하네 이거. 아니 그럼. 내가 번 돈인데 내가 들고 다녀야지. 여편네가 이상한 거라 니까.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개고생하는 건 난데. 그 돈이 지 돈인 줄 안다고. 전화받아봐라. 분명 통장 건들지 말라고 할걸? 시벌. 애초에 내가 안 들어오니까 통장부터 찾잖아 저거.

 

아주머니

(오징어를 하나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하긴. 우리 가게 냉장고 정도는 사장님이 해줬다.

 

세복

냉장고가 뭐야. 저 티비도 해줬겠지.

 

 

   세복은 태연하게 티비를 보는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할 말이 있는 눈빛이다.

 

 

아주머니

맞다. 사장님 정화조 일 계속하죠? 우리 가게도 슬슬 청소할 때 됐는데.

 

세복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하지! 계속하지. 요 며칠간은 나와 있었는데도 꼬박꼬박 하러 다녔어. 이번에 홀트도 내가 하기로 했는데.

 

아주머니

(놀란 듯이) 홀트요? 탄현동에 복지관 큰 거? 사장님 돈 좀 벌겠네. 근데 거기 건물이 커서 사장님 차 한 대로 안 될 것 같은데. 같이 할 사람 있나베?

 

세복

(잔에 술을 다시 채우며) 아니. 정화조 치우는 사람들이 원체 없잖아. 처리장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면 금방 끝나겠지 뭐. 돈 안 나눠도 되니까 이게 나아.

 

아주머니

돈을 그렇게 버셔서 어디에 쓰시게. 술 좀 그만 자시러 오고 취미? 엉. 그런 거 좀 해보셔요.

 

세복

(술을 마시고 웃으며) 취미 같은 소리하네. 취미 좋지. 내가 말이야. 어떤 일까지 있었는 줄 알어? 저번 달 즈음에 이발 좀 하려고 동네 미 장원에 갔었어. 걸어가면 10분 좀 넘게 걸릴 거야. 근데 어떻게 갔는 줄 알어? 정화조 차를 끌고 간 거야. 그 가까운 데를.

 

아주머니

사장님 외출할 때 쓰는 차는 없어요? 아니지. 애초에 그렇게 가까운데 차를 왜 끌고 간 거야.

 

세복

내 말이. 습관이 된 거지. 마당에 멀쩡한 렉스턴이 새똥만 맞고 있다. 시펄. 일 없는 날에도 정화조 차 끌고 일단 나가는 거야. 이 짓이 30 년째다. 애착이 있는 건지,강박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 돈도 모으 긴 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돈 모아서 뭐 하나? 돈 나가는 데가 뭐, 기껏해야 집사람이랑 나 생활비. 그리고 내가 가끔 나와서 쓰는 거. 근데도 집사람이 나 때문에 굶어 죽겠다고, 죽겠다고.

 

아주머니

(잔에 술을 채우며) ….

 

세복

아냐. 어쩌면 근본적으로다가.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였을 거야.

 

아주머니

오래전이요?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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