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째 잔, 코코뱅이 이어준 인연

프랑스 생활기

by binter

한국에 있을 때부터 ‘프랑스에 가면 꼭 먹어야지’ 했던 프랑스 전통 음식이 있었다. 바로 ‘Coq au vin(꼬꼬뱅)’, 와인에 닭고기를 오랜 시간 푹 삶은 요리다. 무엇보다 이 요리를 전통적으로 잘하는 곳에서 먹어보고 싶었던 나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자 나폴레옹이 모자를 주고 간 것으로 유명한 'Le Procope'이라는 식당에 갔다.


밖에서 내부를 보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귀족 저택에 들어온 듯한 화려하고 고급진 인테리어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웨이터들 역시 격식 있게 차려입고 노련하게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에스코트를 받으며 앤틱한 소파가 놓인 자리로 안내를 받은 순간부터 기분이 한껏 들떴다.


오늘만큼은 뚝딱거리지 않고 완벽한 조합으로 주문을 하고 싶었다. '어떤 와인이 이 코코뱅과 가장 잘 어울릴까' 고민하다 선택한 와인은 코코뱅에 들어간 와인 한 잔이었다. 닭과 함께 삶아진 와인의 맛과 와인 본연의 맛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이미 메뉴는 정해졌지만 한참 동안 메뉴판을 보고는 다시 테이블에 놓았다. 그러자 웨이터가 자리로 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코코뱅 하나랑 Julienas 와인 한 잔 부탁합니다."
"완벽하네요."

고민한 보람이 있었다.


잠시 후, 푹 익은 코코뱅이 냄비째로 내 테이블에 올려졌다. 웨이터는 나의 그릇에 닭고기와 감자, 베이컨을 적당히 덜어주고는 "Bon appétit!"를 외치며 떠났다.

겉보기에는 마치 큰 닭으로 만든 찜닭 같았다. 찜닭을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한 입 맛보자 '아, 그래도 다른 요리구나' 싶었다.

오랜 시간 푹 삶은 닭고기는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고, 함께 익힌 감자와 베이컨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다소 담백한 닭과 감자를 두툼한 삼겹살로 만든 진한 풍미의 베이컨이 완벽하게 보완해 주었다. 그리고 레드 와인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약간의 쌉싸래한 맛이 느껴졌는데, 이 덕분에 물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만족스러운 마음에 다른 메뉴는 또 어떨지 기대되고 궁금해졌다.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크림 리조토, 에스카르고 등 다양한 요리를 시켜서 먹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에는 착석한 지 얼마 안 된 한 여성분이 앉아있었는데, 샐러드와 로제 와인을 먹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옆자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뭐 시켰어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대답했다.

"코스 요리요. 샐러드, 스테이크 그리고 로제 와인을 시켰어요"
"아, 그렇군요 혹시 코코뱅 드셔보셨어요? 너무 맛있네요."
"먹어봤어요. 여기서는 아니지만"


이어서 여행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년 3주 정도 장기 여행을 다니는 프로 여행러였고, 프랑스는 이번이 여덟 번째라고 했다. 다만, 마지막 프랑스 여행이 수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그리고 그녀는 홍콩 사람인데 한국 친구들이 꽤 있어 한국 음식에 친숙하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와 나의 여행 일정과 숙소가 매우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니스에 가는 일정이 똑같았다.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혹시 괜찮으면 니스에서 볼래요?"
"좋아요, 내가 니스에서 잘 아는 굴 맛집 있는데 거기 갈래요?"


그렇게 우리는 8월 1일 오후 5시 반, 니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서로의 연락처는 주고받지 않았기에 자리를 뜨기 전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8월 1일 오후 5시 반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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