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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ter Nov 08. 2024

시작된 의심

첫 이별

 

 입사 초기, 우리 파트에는 세 명의 선배가 있었다. A 선배는 입사 전부터 얼굴을 익힌 분이다. 회사에서 매년 주최하는 콘퍼런스에서 발표하신 적이 있었고, 입사 전 해당 영상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를 A 선배와 함께했을 때, 선배의 예리함과 뛰어난 통계 지식 그리고 리딩력에 감탄했다. 이분만 따라가면 나도 저런 멋진 분석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계속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B 선배는 당시 파트에서 가장 연차가 높은 분이었다. 그만큼 커리어가 가장 풍부하셨다. 여러 조직을 경험하셨고, 다양한 분석 프로젝트 경험이 있으신 분이었다. AI를 접목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산업과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박학다식한 분이며, 언변이 매우 뛰어나시고 주변 인맥이 굉장한 마당발이셨다. 이분과는 종종 커리어 상담을 나눴고, 때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나에게는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었다.


 마지막으로, C 선배는 세 분 중 연차가 가장 낮으셨다.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고, 친근한 느낌을 많이 풍기셔서인지, 선배로서의 위화감이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사 초반에는 사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그룹 스터디도 함께하며 빠르게 친해졌다. 당시 연차는 낮으셨지만, 일에 대한 철학을 일찍부터 고민하시는 분이었고,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열정이 가득한 분이며, 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는 선배다.




 안타깝게도 내가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날, A 선배의 퇴사 소식이 전해졌다. 선배를 닮고 싶었는데 더 알아가는 도중에 헤어지게 되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원래 게임보다 금융 도메인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고, 가장 이직이 활발한 연차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쉬워할 틈을 주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B 선배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느라 분주해졌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고, 나는 매일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다. 같이 고생하며 준비한 B 선배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는 달랐다. 내가 들떠 있을 때 선배는 퇴사를 고민하고 계셨고,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B 선배의 퇴사 소식은 A 선배의 퇴사 소식보다 훨씬 슬펐고 오래갔다. 그 마저 떠나면서 의지하던 등불이 완전히 꺼져버린 것 같았다. 예리한 지적으로 나를 긴장시키던 선배의 말이 나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맬 때 이미 이 길을 겪어 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했다. 그래서 그가 떠난다는 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IT업계에서 이직은 활발하다고, 또다시 새로운 인연과 함께할 거라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입사 초반에 겪었던 이 연이은 이별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나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고, 그들의 자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게 했다.



다른 시선으로 조직을 바라보기 시작하다

 A 선배와 B 선배의 퇴사는 나에게 수많은 물음표를 남겼다. 특히 B 선배의 퇴사는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선배는 조직 내에 많은 친분이 있었고, 항상 우리 회사의 인프라와 문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여러 조직을 경험해 본 그가 칭찬하는 조직이라면 완벽한 곳일 텐데, 왜 갑자기 떠나셨을까? 

'금융 치료와 휴식이 필요해서'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납득하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시니어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퇴사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선배들의 퇴사 이유에 업계 변경, 금융 치료가 어느 정도는 차지할 수 있겠지만, 더 큰 진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알고 싶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최소화하고 다른 시선으로 이 조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이 조직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하고 의심의 안테나를 펼쳤다. 그러니 조금씩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건 조직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었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밀도가 높은 사람들이 하는 말은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마음 한편에 쌓여 가고 있었다.


'나도 그거 예전에 했었는데.'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우물 안 개구리로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사실 극도로 소심한 나는, 의견을 내는 것에 남들보다 더 많은 용기를 내야 하는 편이다. 그렇게 힘들게 낸 의견이 본인의 과거 경험을 강조하면서, 나의 새로운 시도를 과소평가하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다시 소심 모드로 돌아와 버렸다. 또한 이 말에는 본인의 위상을 지키려는 듯한 뉘앙스를 줘서 상당히 자기방어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싹트기도 했다.


'아직도 그거 하세요?', '오래 걸리면 그만큼 기대치도 올라가요.'

내가 좀 더 잘하고 싶은,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작업을 할 때 조급하게 만드는 멘트였다. 왜 그리 속도에 집착할까? 이제 속도보다는 높은 퀄리티의 작업물을 내는 게 더 중요한 시기 아닌가? 빠르게 결과물을 내고 피드백을 받아 곧바로 옳은 방향으로 고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납득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조직은 한번 결과물을 내면 고도화할 여건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문득 굳이 완성도를 포기하면서까지 서두르는 것이 최선인가 고민될 때가 있었다. 나는 시간에 쪼들려 빠르게 낸 결과물이 쌓일 때마다 성취감보다는 불완전한 작업물에 대한 좌절감과 회의감이 깊어졌다. 마치 내가 쓰레기를 생성한 것 같았다. 이렇게 생성된 쓰레기는 추후 큰 문제가 터지지 않는 이상 공식 업무로 할당받아 고도화하기 힘들었고, 정해진 업무 시간 외 야근을 해서 다듬어야 했다.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하다

 이제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표면에 나타난 그대로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 너머의 숨겨진 의도를 상상하게 되면서, 점점 상황에 휘말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직도 점차 몸집이 커지면서 서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에 대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 알아갈 방법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온전히 나의 꼬여 버린 상상으로 메워져 버렸다. 검은 기운이 점점 더 몰려왔고 무거워지며 나를 잠식했다.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게 되면서 회사 안에서 나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란 없어졌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기 시작했고 내가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저 일을 하기 위해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런 순간마다 속에서 깊은 괴로움이 밀려왔다.


 의문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부정적인 기운을 더 얻고 싶어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점점 더 일을 미루고 싶어졌다. 무언가 내 의지가 아닌 외부의 이유로 내 의욕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작은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 핑계로 인해 업무를 덜거나 딜레이시키려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행위는 나를 구원해 주지는 못했다. 핑계를 댄다고 해도, 일은 여전히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끝내야만 했다. 불만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내가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다는 자책감까지 더해져 더욱 무거워졌다. 예전의 열정은 찾아볼 수 없었고, 내게 주어진 일은 무감각하게 흘러갔다.
나는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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