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두려움을 몰랐던 나는 쉽게 감정과 욕구에 휩쓸렸다. 초등학생 때 이동 수업이던 한 교과목의 선생님이 어느 날, "책상에 누가 나에 대해 욕을 적었던데, 앞으로는 누군지 바로 알아내고 엄벌할 거니까 적기만 해 봐라." 하고 겁을 주셨다. 원래도 비호감이었던 선생님이 비호감인 어투로 말씀하시니, 반골 기질이 발동하여 그날 처음으로 욕을 적고 튀었다. 공범(?)인 친구들과 욕을 적고 원래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시시덕거리며 각자 어떤 욕을 썼는지에 대해 얘기 나눴다.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리 심한 욕을 적지 않았는데(그 순간 소심함이 발동하긴 했다.)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자율 좌석이라 우리인 것을 모를 것이라는 기대로 나를 안심시켰다. 교실로 돌아와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이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소심한 내가 용기 내어 한 일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다.
몇 시간 후, 선생님이 나와 공범인 친구들을 복도로 호출하셨다.
'어? 설마?'
하고 복도로 나가는 순간, 화가 단단히 많이 나신 듯 붉어진 얼굴의 선생님과 마주했다. 그제야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곧 맞닥뜨릴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선생님은 엄청나게 꾸짖으시며 복도에 엎드려뻗쳐 자세로 한 시간을 버티는 벌을 주셨다. 우리는 복도의 낡은 나무 바닥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울면서 버텨야 했다.
어릴 때 욱하는 마음에 던진 말과 행동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본심 숨기는 법을 터득했다.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니, 외면의 변동성을 없애려 한 것이다. 내 정신과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상관없이 거의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입사한 지 만 2년이 지났을 때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OO 님은 항상 요동 없이 안정적인 것 같아요."
아니었다. 나는 평온해 보이려고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검은 기운이 점점 몰려와 무거워지자, 이 평온해 보이는 외면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은 그야말로 전쟁 상태가 되었다. 실은 수면 아래에서 엄청난 발길질을 하고 있는 백조인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한 번쯤 터뜨리고 싶어 안달 난 나의 마음을 다잡았다. 예전과 달리 지키고 싶은 것이 많아졌으니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내가 쌓아온 세계가 무너지고 리셋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삐뚤어진 나 자신을 홧김에 표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중성이 무너지고 있다
불만이 강해질수록 더더욱 겉으로는 어떻게든 이 속내를 숨기려 오버하게 되면서, 철저하게 이중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예전과 같이 돌아가기를, 이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나 개인적인 삶에서나, 언젠가는 진짜 나 자신을 마주하고 이 모순된 상태를 끝낼 시기가 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 같이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과 다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일상이 반복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검은 기운에 눌려 나는 더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늘 제자리로 끌어당겼다.
어딘가에는 이 답답한 내면을 드러낼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편안하고 조금은 부정적인 친구들을 찾았다. 친구들은 회사에 대한 고충이 모두 하나 이상씩 있었다. 일이 없어서 무료한 친구, 일이 어렵거나 너무 많은 친구 그리고 동료들과 핏이 맞지 않아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친구.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 나왔다. 예전의 나는 리액션만 할 뿐 대화에 끼지 못했다. 당시에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야근이 좋았고, 마음 잘 맞는 친구 같은 동기와 믿음직한 선배들도 있었기에 솔직히 회사 생활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랬던 내가 발화량이 꽤나 많아졌다. 공감받거나 나의 고충은 약과라며 고민으로 쳐주지도 않는상황을 은근히 즐겼고 위로도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은 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그 위로가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생각할 시간만 늦춰 줄 뿐이었다. 그사이 나의 내면의 얼굴은 조금씩 바깥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