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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ter Nov 01. 2024

내가 좋아한 사람들 - 2


나에 대한 기대


 팀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었고, 나는 그중 협업이 활발한 한 파트에 배정받았다. 협업이 활발한 분위기 덕분에 온보딩 기간 동안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 파트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의 데이터베이스 구조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종이에 구조를 하나하나씩 그려 가며 공부하던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멘토님께 질문했다. 개발 히스토리까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지, 파트 내 다른 선배들과 함께 설명해 주시겠다며 회의실을 잡으셨다. 회의실에서 멘토님은 칠판에 복잡한 구조를 하나하나 그려 가며 설명을 시작하셨고, 다른 선배들도 익숙한 듯 그림을 이어서 완성하며 설명을 덧붙이셨다. 그 과정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멘토님이 나를 보시며 "OO 님, 잘 따라오셨나요?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고 물으셨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메모하며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선배들은 "OO 님, 이제 다 아시네~"하며 칭찬해 주셨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생각들이 칠판 위에 펼쳐지고, 각자 조금씩 디테일을 더하는 이 방식이 조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팀의 모습이었고, 이 소통 문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늦은 저녁, 사무실에 정적이 흐를 때 나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곤 했다. 오늘의 목표 업무량을 끝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야근했다. 가끔 (아마도 야근하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멘토님이 그 시간대에 자리로 찾아오셨다. 그리곤 나를 자극하는 말을 남기셨다. 


"OO 님에 대한 기대가 커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해야 해요."


 그 '기대'라는 말은 단순한 칭찬이나 격려와는 다른 것 같았다. 나에게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할 자격이 있으니 한번 달려가 보라는 일종의 미션처럼 느껴졌다. 내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 기대는 책임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현재 상태에 안주할 수 없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은 단지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 다가왔다. 멘토님이 늦은 밤 남기고 가신 말은 나를 더 이상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게 만들었고, 이제는 내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들에 대한 기대


 입사한 지 일 년이 되어 가던 때에 전사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게임의 론칭일이 다가와 그에 맞춰 준비하느라 다들 분주해졌다. 워낙 기대작이라 원래 제공하지 않던 커스텀한 서비스를 준비해야 했다. 그때 파트 내에서 짝 분석을 진행하자는 결정이 내려졌고, 나는 B 선배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B 선배는 평소엔 호탕한 성격이시지만 일을 할 때는 냉철하고 철저한 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선배와의 협업이 조금 긴장되고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일하면서 생각은 빠르게 바뀌었다. 선배는 아이디어를 잘 낼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던져 주셨고, 내가 쏟아낸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주셨다. 선배의 도움을 받으며 점점 더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이디어 구성이 끝나고, 다양한 가설들을 실제로 데이터로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솔직히 이 중요한 작업을 내가 맡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선배는 항상 일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고 꼼꼼하신 분이라 내가 아직 그 정도의 역할을 맡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하실 거라 예상했다. 역시나 선배가 메인으로 분석을 진행하셨고, 나는 주로 데이터 전처리와 공용 함수 개발을 통해 선배를 보조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다 며칠 후, 선배가 메인 분석의 일부를 나에게 부탁하셨다. 그 순간,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한편으로는 그가 나를 신뢰해 주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지만, 동시에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느껴졌다. 그래도 그 도전과 인정이 반가웠다. 이전에는 선배의 서포터 역할에 만족했지만, 이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 기회에 가슴이 뛰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분석이 조금이라도 비약되면, 선배는 차가운 눈빛으로 예리한 질문을 던지셨고, 그때마다 긴장한 채로 머리를 빠르게 굴려야 했다. 선배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논리를 꿰뚫어 보듯 했고, 내가 놓친 부분을 빠짐없이 짚어냈다. 선배 앞에서 내 허점들이 여지없이 드러났지만, 덕분에 겸손해졌고 더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리고 배울 점이 많은 조직에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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