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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ter Oct 25. 2024

내가 좋아한 사람들 - 1

오늘은 회사 가는 날이다!

 새벽 5시 반, 설렘이 나를 깨웠다. 온보딩 기간 동안은 격주마다 회사로 출근했다. 출근날이 다가오면 오랜만에 예쁜 사옥을 구경하고 사원증을 목에 걸며 동기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났다. 아침에 뭘 입을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미리 주말에 5일 동안 입을 옷을 골라 놓고, 빳빳이 다려 놓았다. 회사에 도착하면 3층에 코시국 신입만 모여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정식으로 좌석을 할당받기 전까지 TF 룸을 임시로 사용했는데, 입사 동기들끼리 모여있으니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마치 우리만의 작은 아지트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면 다른 동기의 모니터를 보며 괜히 대화를 걸었고, 누군가 여행을 다녀오면 공용 테이블에 간식을 두어 함께 나눠 먹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시험이 끝난 대학생처럼 뒤풀이를 즐겼다. 구내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산책도 하고 일찍 퇴근해 카페에 가는 소소한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멘토링 방식은 팀마다 달랐는데, 우리는 특히 매일 멘토링을 받는 팀을 부러워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부러울 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팀은 아침마다 카페에서 멘토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팀과의 네트워킹을 활발히 추진했다. 반면 우리 팀은 멘토님을 자주 만나기 힘들었다. 공식적인 일정은 한 달에 한 번뿐이었고, 식당이나 카페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게 전부였다. 다른 팀과 비교하지 않았다면 그리 서운하지 않았을 텐데,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신입은 우리 팀뿐이었기에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면 자주 우리만 남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옹기종기 모여 서로 의지했다. 다행히 같은 팀 동기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았다. 시간이 남을 때는 서로의 작업을 리뷰해 주거나, 그룹 스터디처럼 생산적인 일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작은 TF 룸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온보딩 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으로 전환된 후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코로나가 조금씩 잠잠해지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춰졌을 때,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로 전환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든 팀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 나와 가장 또래로 보이는 Y 님이 눈에 들어왔다. Y 님도 풀 재택 시절에 가끔 회사로 출근하셨는데, 멀리서 지나가시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자세로 자동 출입문을 지나가시는 모습이 그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알고 보니 나보다 한 살 어린 두 달 선배셨고, Y 님도 우리 무리가 똘똘 뭉쳐 다니는 모습을 보고 우리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부러우셨다고 한다. 그런 공동의 관심 덕분에 Y 님과 우리가 절친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입의 무기: 호기심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조직 내 거의 모든 사람을 탐색하고 다녔다. 밥을 먹을 때, 회의를 할 때, 티타임을 가질 때도 우리는 열심히 사람들을 관찰하고 재미난 포인트를 찾아냈다(물론 일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특징을 수집하고 우리끼리 따로 모이기만 하면 새로 알아낸 사실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는 내용을 우리가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선두 주자였다. 원래 우리 조직은 서로 나이도 정확하게 모르고 추정만 하는 사이였고, 일 년에 몇 번 없는 회식에서도 술병을 단 한 병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각자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밖과 유사한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거리를 두는, 소위 말해 '노잼'인 조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입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호기심을 무기로 삼아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처음으로 사적인 만남을 만들어 냈다. 드디어 숨어서 관찰하지 않고 당당하게 알아낼 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술자리를 한 번도 가지지 않으셨다고 해서 술을 즐기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술을 좋아하고 잘 드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사적인 술자리를 제안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한 번 자리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매주 술자리를 가졌다. 매번 만날 때마다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과거 연애사, 망한 소개팅 썰, "이런 말 하면 내가 쓰레기 같겠지만..."으로 시작하는 다양하고 깊은 얘기들이 주로 오갔다. 술이 주는 몽롱함 속에서 나눈 대화는 더 이상 '회사'라는 틀에 갇혀 있지 않았고,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막차 시간을 넘긴 채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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