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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ter Oct 11. 2024

프롤로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그들만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가 만든 세계가 있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다. 내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 모든 것이 사실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얻은 정보, 크고 작은 시행착오의 결과이며 이 결과는 다시 체인처럼 내가 속할 사회를 정한다.


세계는 상처, 사랑, 희망 등으로 다채롭게 이루어져 있으나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하나로 점철되는 듯하다. 무형에서 유형으로 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세계를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유형의 그것을 지키고 싶어 하며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열정'이라는 유형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가면서 하루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프로다움을 느꼈고 술잔을 부딪히며 정을 나눴다. 이 과정에서 '신뢰'라는 것이 생겼다. 이는 곧 '그들이 나에게 갖는 기대'와 '내가 그들에게 가진 기대'를 의식하게 했다. 그렇게 그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열정이 나의 세계에서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초반에는 열정을 유지하고 더 타오르게 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다. 그러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행복하기도 했지만, 상처받고 분노도 했으며 이에 따라 그것의 모양이 바뀌었다. 나는 초반에 가졌던 형태가 온전한 상태라고 생각했기에 변화하는 것을 막고 원상태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려웠다. 열정이 예전보다 작아지는 것을, 예열 시간은 길어지고 유지되는 시간은 짧아지는 것을. 이 변화를 어떻게든 늦춰 보려고 혹은 막아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더욱 갈망했고, 변하고 있는 자신이 미워졌고, 탓할 거리를 찾았다.


내게 맞지 않는 열정을 가졌던 걸까?
나에게 적당한 열정은 뭐지?
사실 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인 걸까?


그러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 '에렌'의 '자유'에 대한 지독한 집착으로 가득 찬 세계를 만났다. 단단해 보였던 그의 자유의 모양도 가까운 사람의 영향으로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심지어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며, 내가 느끼는 혼란이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깨닫고 큰 위로를 얻었다. 중간중간 흔들린다고 에렌이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며, 나 또한 열정이 식고 무기력해진다고 열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여러 세계가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은 어떤 세계든 한 상태에 머물 수 없다. 변화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혼자 한 상태에 머물며 다른 세계와 단절된 세상에 살겠다면 그것은 지옥에 갇힌 듯 더욱 불행할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의 세계가 변화하는 순간들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다. 회피하고 싶어도, 회피한다 해도 빠르게 돌아오는 것이다. 마주한다고 당장 해결되는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이 '생각'하기 위한 시작이다. 마주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내 세계에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고, 그 변화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자세를 갖추어 가는 나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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