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들 3명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자칭 판포로 불렸는데, 판타스틱 포의 준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여자애들보다 낫다고 생각한 자뻑 여자애들 4명은 항상 몰려다녔다. 실제로 잘난 맛에 다니니까, 애들도 우릴 우러러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재수를 한 나와, 한이라는 여자애도 재수를 해서 동갑이었고 효와 민은 현역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효와 가장 친했는데 나중에는 민이 같은 지역이라서 등하교를 같이하며 더 친해졌다. 효는 약간 아이유 같은 이미지여서 흐릿한데 청순했고, 민은 트렌디하게 자신을 잘 꾸밀 줄 알았다. 한은 걸크 느낌이어서 캐주얼하게 다녔지만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는 나대로 특이하지만 나만의 멋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니는 애였다. 우리 넷이라면 졸업해도 같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애들은 연애를 시작했다. 난 화이트데이에 공개적으로 고백을 한 오빠를 참으로써 더욱 기고만장해 다니고 있었고, 효랑 민은 중앙동아리에 들게 됐는데, 거기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커플이 하나 생기고, 그 커플이 연계해서 2 커플이 생기게 되었다.
그때 동기 여자애들이 미팅을 주선해서 시립대 애들이랑 했는데, 그중 럭키하게 주걸륜을 닮은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순수하고 공부만 한 범생이 스타일로 보였다. 미팅 자리에서도 수줍기만 하던 걔는 왜인지 내 번호를 가져가더니 데이트를 신청했다. 재즈를 좋아하던 내게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재즈공연을 예매해서 데려다주고, 기념일에는 꽃을 주는 낭만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런 순수함이 어른 같지 못해 보인다는 이유로 문자이별을 고했다. 걔는 이유가 뭐냐며 매달렸지만,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재미가 없어서'였다.
학교에서 처음에는 철학 동아리를 했었는데, 농구동아리도 들고 영어동아리까지 하는 욕심쟁이였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 하나에도 집중할 수 없었고, 그걸 본 철학동아리 언니가 '그렇게 할 거면 동아리 하지 마'라는 직언을 했다. 그 언니 입장에서는 본인이 애정을 가진 동아리에 대충 참석하는 듯한 내가 아니꼬워 보였겠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참석하려고 하는 건데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래서 그 동아리는 나가지 않고 농구와 영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농구동아리라는 것도, 사실상 매니저 역할이라 실제 농구를 하진 않는 동아리였는데 잿밥에 관심이 있어서 스코필드를 닮은 환이랑 좀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환이가 인천에 오고 나도 일산에 가보면서 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에버랜드에 같이 가며 그 에버랜드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후배들을 마주치는 바람에 들키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오랜 연애로 이어지진 못했다. 대화를 할수록 깊어지는 게 아니라 피상적이라고 느껴졌는지 그는 이별을 고했고,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곤 영어동아리를 자주 가기 시작했다. 그중 겉멋이 들어서 다른 애들한테 툭툭거리는 말투로 시비를 거는 선배가 있었는데, 어릴 때는 그런 게 멋있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병맛인데, 내가 영화를 좋아하던 이유로 몇 번 영화도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보곤 했지만, 그마저 나중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