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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Mar 18. 2024

알바로 점철된 나날들

처음 한 아르바이트는 허브아일랜드라는 식당이었다. 1층에는 소품들을 팔고, 2층은 양식당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면접을 보자 사장은 바로 일하러 나올 수 있느냐 했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2층은 꽤 바빴는데, 손님이 꽤 있어서 서빙을 계속해야 했다. 고됐지만, 1층에는 사장님 아들과 그의 친구들이 있어서 친해지는 재미가 있었다. 그들은 나와 4살 차이가 났는데, 집값을 아끼기 위해 같이 살고 있었다. 그들끼린 동갑이라 서로 친하게 지냈고, 나도 그 무리에 껴서 놀게 됐다. 무리의 완은 20살이던 내게 어른처럼 보이던 사람이었다. 막 군대를 제대하고 일을 하고 있던 그를 자주 마주치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다른 오빠들에게 말하고 상담하니까 그들도 도와주려고 했다. 사장 아들의 인피니티를 타고 다 같이 을왕리에 다녀오면서 선루프를 열고 올라가 바람을 느꼈다. 나는 그때 자유로웠다. 수능이 끝난 해방감에 뭐든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완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는 ‘나 좋아하지.. 좋아하지 마'라는 말로 거절을 했다.


그 무리들은 또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거절받았는데 계속 들이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거리를 뒀더니, 완은 다시 다가왔다. 처음 칵테일을 마시고, 장을 보러 같이 갔다.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해줬는데, 그 맛은 가히 엉망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날 좋아하는 마음이 별로 크지 않았는데, 어린 나는 그 마음을 내게 돌리고 싶어서 노력했다. 하지만 사랑은 노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자격지심에 학교에 가는 날 불안해했다. 가서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에게 본인이 밀릴 거라 생각했던 거다. 실망스럽게도 그런 태도는 내 태도를 짜게 식게 만들었다. 그의 생각대로, 대학교에 가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2번째로 일하게 된 곳은 강남성모안과였다. 1학년 방학 때 알바 자리를 알아보던 중 공고가 나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원장은 바로 출근하라고 했다. 그 자리는 조무사 자리를 대신한 것이었는데 당시 월급이 80만 원이었다. 박봉이었지만, 방학이라는 기간 동안만 하기로 합의가 되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출근을 시작했다.


작은 병원이었지만 환자는 꽤 많았다. 환자는 계속해서 왔고, 그런 환자에게 안압을 측정하고, 간단히 할 수 있는 업무들을 보조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과 친해지고 자주 오는 환자들의 얼굴도 익힐 수 있었다. 당시 자주 오던 제약영업이 있었는데, 나와 별 나이차이가 안나 보이는데 항상 원장이 하라는 대로 밥 먹으러 오라면 오고 수발을 들어주는 게 어린 나이에도 좀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 연민은 그에게 잘해주게 만들었다. 데스크에 있으면서 말 한마디라도 더 걸고 뭐라도 챙겨주곤 했다. 물론 방학이 끝나자 그 사이는 흐지부지하게 됐는데, 여기서부터 '직장은 퇴직하면 남이다'라는 걸 알게 됐다.




당시 퇴근하고 나면 다른 식당으로 바로 알바를 갔는데, 거긴 닭갈비를 파는 식당이었다. 단지 내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식당이 깔끔하고 주인분 내외가 인성이 좋아 일하는 재미가 있었다. 열심히 하는 만큼 사장은 더 잘해주었다. 당시 식당에는 나와 또래인 2명의 남자애가 있었는데, 한 명은 여자친구가 있는 애였고 다른 한애는 없었다. 사장은 좋은 대학에 다니는 나와 대학을 다니지 않는 영우를 은근 차별했는데, 차별받는 게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장 내외가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 있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해서 실제로 더 잘하게 했고, 차별받는 영우의 입장에서는 또한 더 잘하게 하고자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알바가 끝나자 2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학교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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