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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공허하고 기분이 더러웠다

by 강아 Mar 26. 2024

그를 만날수록 안정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불안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헤어졌다는 그의 얘기를 들었어도, 요즘같이 이혼이 흔한 시대에 부모가 이혼했다고 불안정한 걸로 낙인 하진 못하더라도 그런 징후가 그에겐 뚜렷하게 보였다. 누구와 안정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게 자신 없다면서, 과거에 애인에게 카드를 주었더니 그 카드가 호텔에서 찍혔다고 했다. 그걸 말하는 그는 피곤해 보였지만, 그런 일을 겪은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순 없는 것이다. 운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그 여자가 나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나쁜 여자인 줄 모르고 사람을 만난 그의 부주의함일 수도 있었다. 또는 그가 그녀를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쌍방인 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를 만나면 공허하고 기분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절망의 감정에 다다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것도 그였음을 부인하진 못하겠다. 내가 그런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을 땐 어김없이 연락이 와서, '이 사람도 나와 같이 고통스럽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그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고통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린 신기하게 그게 보이는지, 상황을 더 쉽게 공감하게 하고 더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던 중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어제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은연중 전화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 싫었던 것도 있다.


'커피 한잔 사들고 갈게'

'싫어'

'꽃이 거기도 폈어? 같이 보자'

'싫다고‘


화가 나는 건 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 스케줄에 맞춰 오겠다고 하는 습 때문이었다. 직장인에게 일요일 6시에 당일 만나자고 하는 게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일인지 그는 몰랐다고 했다. 그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었다. 처음 만났던 걸 후회했다. 대화할수록 뭔가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미안하다는 반복에 고쳐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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