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헤어지던 날,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연락했다. 그는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사람이 진짜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자극하고 싶었다. 내 처지로 그를 도발해서, 그가 넘어오는지 그렇지 않은지 테스트하고 싶었다. 계속해서 그를 응시하자, 그는 참는 듯이 보였다.
그는 그 이후부터 내게 집착했다. 스터디를 하면 다른 사람보다 내게 시선이 오래 머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질책이, 내게는 그 정도의 강도가 아니라는 것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고 싶었다. 그는 애초에 내 상대가 아니었다. 그냥 낚싯대를 걸어놓고, 넘어오는지 넘어오지 않는지 기다리다가 넘어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넘어오면 '아 넘어왔구나' 딱 그 정도였다. 당시 실연의 아픔이 내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이기적이었지만, 그 이기심이 아니고선 그때의 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
항상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느끼던 그는 본인이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 관심을 가지는 걸 참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그는 테스트용이었고, 또 다른 낚시감을 찾아 헤매고 있던 나는 처음에는 친구로 시작한 다른 사람과 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충전이 필요해서 충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으니 공교롭게도 그였다.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순간, 잠금이 걸려있지 않은 내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뭐해요?' 그 간단한 세 글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은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걸 본 그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삼자의 눈으로 봐도 질투가 서려있음을 알 정도로 그는 이후로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