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타인을 만나고 오면 충족감보다는 후련함이 컸다.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맞춰줘야 하는 게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를 알게 된 건 예전 나 빼고 모두 프리라이더였던 팀에서부터였다. 그녀는 싹싹하고 내 지랄 맞은 성격이 오히려 친언니와 닮았다며 이해해 준 친구였다.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했던가. 그녀는 다른 회사로 갔지만 그 이후에도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 갈 일이 있어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그녀가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내 사람이라 생각되는 범주에선 혹여 거절하더라도 사정이 있겠거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으로 간다고 했더니 근처의 핫플을 찾는 것도 배려쟁이였다. 그런 점이 그녀를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하는 요소였다. 그녀는 대왕통닭으로 오라고 했고 역시나 힙했다. 내가 방문하지 않은 동안 서울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새삼 느꼈다.
웨이팅 하고 있으니 그녀가 왔고 예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웃었다. 평소의 무심하고 차갑던 나는 친한 사람을 만나면 감정에 충실하고 아이 같은 면을 내보이게 했다. 그리고 진짜 인연이면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이 커서 잘 만났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녀는 이상한 사수를 만나 그녀가 받을 상장을 그녀가 만들고 역시나 보고서의 자간을 신경 쓰는 자에게 고통받았는데 여러 이직 끝에 지금은 나이스한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결혼을 많이 했는데, 진짜 잘 맞는 사람이랑 하는 결혼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전에는 가정적인 사람을 보고 왜 이렇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냐고 화를 냈던 친구도 결혼하니 그런 안정감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명암이 있는 것이어서, 부자인 집과 결혼한 사람은 시댁행사에 끊임없이 불려 가야 했고 간혹 깨어있는 부모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란 것도 다시금 얘기했다. 반면 좋지 않은 선례인 속도위반은 모두가 뜯어말렸으나 결국 했고 지금은 다행히 안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종특인 친구와 결혼 잘한 걸 비교하고 까내리는 건 말만 들어도 피곤했다.
그녀가 옆에서 본 나의 회사생활에서의 감정적인 모습- 선배한테 하극상하거나 시발새끼라고 욕하던 모습은 너무 오랜만에 들어 생소했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그럴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미 회사에 적은 너무 많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보지 않으니 그것으로도 다행이다. 가부장적인 남자는 최악이라며 연하를 만나고 있는 그녀는 행복해 보여서 계속 행복했으면 했다. 분명 만나는 동안 즐거웠는데, 헤어지고 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고 그런 시간을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을 때 예민해진다. 물론 누군가 같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홀로 지내는 시간을 포기할 만큼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진 않다. 누군갈 만나면 헤어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