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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삶

by 강아

별다른 일 없이 일하고 딱히 업무 스트레스도 없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당시 갑자기 졸렸다 피곤하고. 그래서 휴게실에서 잠시 쉬다 왔다. 그랬더니 약간 나아진 것 같았는데 기본적인 상태는 동일해서 퇴근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보고를 하라고 했다. 그가 내 성과를 만들어주려는 것도 안다. 그러려면 지금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하기 싫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갔더니 자리에 없었다. 그랬는데 다시한번 보고를 드렸는지 확인하기에 할 수밖에 없었다.


하고 나오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왜냐고 물으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시키니까 보고하고, 별다른 일 없이 마치고 나왔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같이 앞으로의 생활이 이럴것이라는 그 불가해한 일상때문일지도 모른다. 불합리한 일을 시켰던 그, 그걸 할수밖에 없는 나, 그 무력함이 반복될 거란 기시감.




그러고보면 최근에 이런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거 같은데 왜 그런진 모르겠다. 회사를 규칙적으로 다니고 있고, 기분이 저하되면 걷기를 하고,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잤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글을 썼고, 활자를 읽었다. 대출금리가 올라서일까? 각종 고지서와 공과금, 이자를 내면서도 올랐구나 하고 납입하면 그만이었다. 환기시키고 싶을땐 마사지를 받았고 차를 마셨다. 그러면 조금 나아지는것 같기는 했는데 또 반복이기 때문이었다.




이 삶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걷기를 하면서 한건 시간이 초단위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아무생각을 하지 않으면 시간은 무심히도 흘러가는구나 이런 생각 든다. 이 시간의 연장선속에서 사람들은 약간 기뻐하다가 지루함을 견디며 나이를 먹는다. 어쩌면 걷다가 10년전의 나를 생각했던것 같기도 한데, 그 당시의 나는 생기있었지만 그때도 인생의 무상함을 견디고 있었다. 과거니까 미화하는거지 어쩌면 그때도 똑같은 저하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단 그 정도가 약화된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렇게 십년뒤가 찾아올 것이다. 동일하게 권태에 대한 지루함을 참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어쩌면 삶에 대한 낙관적임을 믿었던건 20대 이후로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지겨움을 몸소 겪어내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죽고, 누군가는 떠난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겠지만 예전만큼의 감정은 사라진 후다. 또 다시 헤어진다. 그런 과정을 수없이 겪으며 단지 익숙해지지 않고 무뎌질 뿐이다. 어릴때 겪었던 경험을 통해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들은 위험하니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최고와 최저점을 겪지 않으려 하며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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