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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인의 주말

by 강아

항상 주말이 되면 주중에 회사 다니느라 못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즉흥적으로 움직인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기가 져서 미국스타일로 프라이와 베이컨, 오트밀을 만들어 먹었다. vascoprod를 듣다가 불현듯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보톡스를 맞으러 나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보통 기분이 저하될 때는 자기 관리를 해주면 올라가는 경향이 있어 수년간의 경험으로 병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가는 길은 네비가 빨간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앞차가 빠지지 않아 신호를 보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차선을 왼쪽으로 틀어 앞쪽을 봤지만 그저 차가 정체되어 있는 것밖에 볼 수 없었고 기다린 후에 앞으로 가니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밴의 앞부분에는 거멓게 어디에 부딪힌 거 같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도로 한편에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상을 짓고 있었다. 사고현장에는 무조건 개입해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미 울고 있는 그의 옆에서 한 여성이 부축하고 있길래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앞차가 지나가는 길을 만들어주려 깜빡이를 켜고 뒤로 후진했더니 뒤차는 경적을 울렸다. 결국 그 뒤차는 내가 들어가는 건물로 같이 들어왔는데, 누군지 면상을 보고 싶다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올라와 버렸다.


뷰티의원은 만석이었다. 데스크는 30분 정도 기다릴 수 있다고 했지만 10분이 되지 않아 호명됐다. 보톡스만 한다고 했고 여의사가 들어와서 머리를 뒤에 대라고 했다. 시술은 10초도 되지 않아 끝났고 이소티논까지 처방받아 나오려고 했는데 기다려도 호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처방전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야?라고 느꼈지만 사실 급할 것도 없는 주말 오후였다. 결제를 하고 나오자 병원은 다시 전화를 걸어 약제비와 시술비가 별도결제라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아까부터 굳은 얼굴을 풀지 못하던 나는 결국 직원의 죄송하단 말을 들으며 다시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을 일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다음으로 발관리가 예약되어 있었고 가는 동안에도 기대되거나 그런 것도 없이 어떤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느낌뿐이었다. 외출하게 되면 몰아서 처리하는 나는 구두수선도 해야 했고 망가진 지퍼도 고쳐야 했지만 그 두 군데를 찾지 못했다. 도착하게 된 샵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고 직원은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내 발은 발톱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정리해 드릴게요라고 하더니 파일로 슥슥 긁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내 발을 붙잡고 열중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기분이 나쁠 것이 없는 쉬는 날이었지만 외부적인 상황-누가 경적을 울리거나 직원의 미흡한 서비스-로 쉽게 짜증이 나는 성격은 노력한다고 하지만 예전과 동일했다. 결국 누군가 나를 정성 들여 관리해 준 그 경험으로 기분이 다시 좋아질 수 있었다. 그녀가 명절에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지만 그 말이 정말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해서 하는 말인걸 예민한 나는 알 수 있었다.


관리가 끝나자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흔쾌히 혼밥을 했다. 원래 만원인 짬뽕이 이벤트가로 8천 원이라고 했다. 분명히 짜장을 먹고 싶었는데 왠지 주문할 때 짬뽕이라 말해버렸고 정정하기 귀찮아 그냥 나오는 대로 먹었다. 꼭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 배고파지는 습성이 있었는데 배를 채우고 나자 어쩐지 너그러워지고 말아서 마트에서 호객하는 대용량치약도 샀다. 평소 같으면 거절했을 홍보였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티 없이 맑아서 주저 없이 '주세요'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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