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 무렵 보스가 로데이터를 찾았다. 계장이 그에게 전화해서 그가 내게 일을 시키는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이니 하는 것은 맞는데 그렇게 찾으라고 한 후 독촉하는 게 꼴 보기 싫은 것이었다. 공용폴더를 본인도 볼 수 있으면서 내 자리에 와서 뭐라고 하는 게 눈꼴 시려서 뭐라고 했더니 본인이 찾더라.
찾는 것도 시간을 주고 찾으라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5시에 일을 주고 내일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보스가 계장에게 벌벌 기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계장도 국회가 쪼니까 긴급하게 전화를 했겠지. 그걸 들은 상사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내게 말하는 걸 보고 있으니 '왜 별일도 아닌 걸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생각했다.
개인평가가 나오는 날이었고 C를 받았다. S A B C D 등급으로 나뉘는 것 중에 4등급을 받은 것이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정규분포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최하위에 속하는 등급이다. D를 받은 적도 있으니 C 받는 것에 대한 타격은 없다. 하지만 승진연수가 지났고 몇 번 고배를 마신 터에 보통 승진자에게 고과를 밀어주는 걸 생각하면 이번에도 안될 거란 걸 가늠할 수 있었다.
플랜 B, 플랜 C까지 세워놓았지만 또 인사발표가 나는 날의 패배감은 동일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 평소와 같이 오늘 퇴근시간 전에 일주면서 내일 하라고 하는 것, 그 과정에서의 까라면 까라는 수직적 조직문화, 이러한 점수를 줘놓고선 뻔뻔하게 일을 시키는 것 모두가 짜증이 났다. 관리자는 티오는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정말 이젠 턱끝까지 차올랐다.
어떤 이는 말한다. 회사는 안정적 현금흐름으로 다니고 승진 같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재테크에 올인하는 것이 맞는 거라고. 물론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승진시즌이 되면 부조리함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해도 승진은 내정되어있지 않냐고 말해야 하는 걸까. 이런 날이면 다 내려놓고 싶어진다. 직장 없으면 굶어 죽진 않을 텐데 쥐꼬리만 한 월급과 내 존엄성을 맞바꾸는 것 같아 애써 나를 추켜올리다가도 모두 다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라디오에선 아침의 피아노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한부가 열린 창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같은 과업을 반복하는 그들을 부러워했단 이야기가 나왔다. 큰 병이 없고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해도 인간은 그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