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 삶과 수동적 삶
오늘은 상위요구자료 때문에 하루종일 실랑이 한 날이었다. 가장 스트레스받는 건 상사와 스타일이 안 맞는 것이다. 어제 자료요청이 있었고 그는 굳이 야근해도 되지 않아도 될걸 퇴근 이후에 남았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고 몇 개년 자료를 가공해서 보내야 하는 일인데 호들갑이었다. 그의 감정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의 성마름이 전해져 온다.
오늘은 신규폐업 외에 매출액을 소팅해야 했다. 그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자료를 보냈더니 상위는 통화 중이었다. 회의를 갔다 온 그는 또 독촉하기 시작했다. '전화했어?'라고 하더니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역시 통화 중이다. 내게 물어도 '통화 중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또 회의를 다녀오더니 '00' 이름을 부른다. 간섭받기 싫은 나는 이름이 불리는 것도 민감하고,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별로다. 오늘 벌써 5번은 불린 거 같다.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 추가데이터를 작성하라고 했고 그건 상위가 보고서를 보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상사가 너무 저자세로 나가니까 일 시키고 싶어서 시킨 거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결국 보내고 나서도 보냈는지 또 확인하지만 안 보낼 리가 없다. 이름을 부르는 뉘앙스도 다른 직원들과 미묘하게 다른걸 나만 눈치채고 있다. 누구를 부를 땐 상냥하고 나를 부를 땐 우악스럽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대해서라면 할 말 없지만 사람과 마주하기 싫어하고 그런 접촉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회사생활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인 것 같다. 이걸 십 년간 겪어오면서도 못 그만두는 나도 마음에 안 들고 하루하루 불만족하면서도 다니고 있는 나도 같잖다. 분명히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나. 실패라는 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두려운 거 아닌가. 자기혐오로 뒤덮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