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사랑했단 것이 영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감정에 매몰되어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고통스러울때는 그게 계속될줄 알고 더욱 구렁텅이에 빠졌고 그건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같은 상태인 것은 없다. 상황은 변하고 영원한건 없다.
댈러웨이부인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사랑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부인이다. 그러나 그런 여성에게도 우울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고 유복한 가정인데 왜?'라는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그건 돈이 많거나 표면적인 이유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디프레스라는 감정은 우리사회가 객관적인 조건이 있다면 벌어지지 않아야 할것이라 여겨지지만 나타나고만 만다.
그녀는 자녀를 버리고 가출한다. 하지만 모성이란 것도 여성에게 사회가 주입시킨 것이 아닌가? 여자라면 응당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은 욕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시선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는건 애초에 생각하지 않게 됐다. 모든 여성이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나 자신도 아이로 인해 내가 잠을 못자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상황이 되었을때 내 자식을 원망하게 될 나를 알기 때문이다.
댈러웨이 부인의 자식은 결국 시인이 되지만 그 또한 부인에게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고, 부인은 그런 남편에게 희생하며 산다. 메릴스트립은 그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아니냐고 묻지만 자신을 포기한채 나에게만 집착하는 여자가 남자는 숨이 막힐거 같다. 메릴과 남편 심지어 둘다 게이이다. 그러면서 한때 사랑했다는 이유로 그걸 놓지 못하고 매달리는 모습이 슬펐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한때의 감정을 나머지 인생에 의무로 종속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댈러웨이부인을 쓴 작가는 자살한다. 남편이 소설가인 부인 직업을 존중해주고 그녀를 위해 시골에 요양까지 가고 정신병에 걸린 그녀가 다시 런던으로 가고 싶다고 하는 모든 것을 여자위주로 생각하지만 결국 자살하고만 만다. 나는 이 시간의 흐름에서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것을 욕망하며 살게 될까.
내게 헌신적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좋은가정 환경에서 컸고 자식에게도 그런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을 원했고 결과적으로 그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내가 가지지 못한걸 가진 사람에게 끌렸지만 그것 또한 유한했다. 분명 (결핍된걸 가진)그를 만나는 시간만 유효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은 무효한 것 같은 시간이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게 끌렸다가 그 또한 헤어져버리고 나니 그건 사랑이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이라 느꼈던 사람도 이별로 결과도출되자 더이상 사랑이란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