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친구를 만나고 와서 드는 괴리감

by 강아

중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가 결혼을 하면서 연락이 끊겼다가 싸이월드로 연락이 되어서 근황을 주고받다가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친구랑은 학생 때 교환일기를 쓰며 친해졌고 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더 친해지게 됐다.


마침 찾아보니 어릴 때 친구가 써준 편지가 있길래 가져갔다. 기억나지도 않는 일들이 거기 써져 있었고 평일이면 회사에 찌들어 있을 시간에 친구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는 모든 것이 아이 위주였다. 이사를 가는 것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고 여름캠프를 가는 것도 아이의 영어 때문이었다. 나는 날 위해서 삼십만 원 학원비를 긁는 것도 덜덜 떠는데 친구는 아이를 위해서 오십만 원의 학원을 보내고 추가로 여러 가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유학을 가겠다 했더니 친구는 가지 말라고 했다. 거긴 너무 멀다며 비행기 4시간을 타면 갈 수 있는 싱가포르가 어떠냐고 했다. 안정추구형인 친구는 20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고 나는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느낀 건 그냥 우리는 다르구나였다.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사서 집에 갔다.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들어가니 아이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숙제하라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아이가 가져온 건 영어 교재였는데, 초등학생이 쓴 것 치고는 꽤 수준이 있다 싶었다. 내가 어릴 땐 영어를 초등학생부터 배우진 않았는데, 요새는 점점 선행학습이 빨라지고 있는 것 같았고 학원으로 끊임없이 조리돌림 당하는 아이가 꽤나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친구는 자기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적게 하고 있는 거라 했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낳는다 해도 남들에게 뒤처질까 무서워 학원을 여러 개 보내고 싶진 않은데, 부모가 되면 막상 그렇게 안 되는 모양이었다. 끊임없이 떠드는 아이를 무시하지도 못할 것이고, 일일이 대꾸하다 보면 '심심하진 않겠다'라고 했더니 친구는 웃었다. 하지만 디폴트가 조용한 집에서 살다 온 나는 그런 환경이 적응이 되지 않았고 정말이지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외벌이인 친구는 어릴 때 독박육아를 했는데 본인이 아플 때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희생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을 때 그러지 못할 것 같았고 나중엔 그런 아이(의 존재)를 원망마저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학원에 가고 다시 친구와의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지만 회사에선 일 연락이 왔고 오랜만의 친구와의 만남에 다시 차를 돌려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유년을 공유했던 친구는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고 난 독신 여성이 되었다. 같은 나이지만 '엄마'라고 부르는 자식을 가진 그녀와 뭔가 다른 선상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생활패턴이 아이에게 맞춰진 그녀와 달리, 나는 내 일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는 말까진 하지 않았다. 요새 생각하는 것들, 내 진로나 회사에서 느끼는 모멸감 같은 건 말해도 결국 돌아오는 길에 '말하지 말걸'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수년간 인간관계를 겪으며 체화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반가웠다. 하지만 집에 오면서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할 수 있었을 것들이 생각이 났다. 가장 친했던 친구마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점점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쓰는 일에 인색해지는 것 같다.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갈 것이고, 나는 뚜벅뚜벅 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 그녀의 답은 결국 '아이'로 치환되었고 그녀는 '그러니까 연애해'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물론 친구가 좋은 의미로 한 말인걸 알지만 어떤 거리감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도 분명 이런 어긋남을 느꼈을 텐데 그게 어른이 되어 더 민감하게 느껴지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솔직하게 느낀 걸 말해도 감정이 상하지 않는 관계란 참 좋은 것이지만, 우린 이젠 나룻배를 타고 각자의 길을 가다 한 번씩 만나 반가움을 표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전 02화혼자 집에 남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