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유산 상속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가족 단톡방에는 알람이 울렸다.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네'
'나한테는 새벽 5시에 전화를 했어'
왜냐고 묻는 이모의 말에 엄마는 말했다.
'돈이 다 없어졌다고'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나눠준 돈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돈이 다 없어졌다고 한 것이었다. 장에 나가 한 푼 두 푼 모아 가계를 운영하던 할머니는 돈에 엄격했다. 그녀에겐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이 항상 일치해야 했으며 한 치의 오차라도 생기는 날엔 '계산이 안 맞아'라며 큰일이 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모아 온 돈이 자기 수중에는 하나도 없다며 자식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서는 전에 전화를 한 것을 잊고 같은 자식에게 전화를 걸기를 여러 번이어서 어머니는 한번 가봐야겠다고 집을 나선 참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일은 내 일이어서 터미널에서 어머니를 만나 요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은 비가 왔다. 말은 안 했지만 그런 날씨가 마음을 더욱 가라앉게 하는 것 같았다. 시설에 계신 할머니의 일상은 기다림이었다. 눈뜨면 일만 했던 할머니는 이제 소일거리가 없어 자식을 기다리거나 자식에게 전화를 거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셋째가 온다는 날엔 아침에 일어나서 셋째만 기다리는 것이다.
역시 도착하냐 할머니는 왜 지금 왔냐며 어머니를 타박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것임에도 새벽에 눈떠서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에겐 함흥차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를 뵈러 가면 교외로 모시고 나가 식사를 하곤 하는 게 이벤트라, 근방으로 갔다. 할머니는 걷는 것이 불편해 지팡이가 필요하고 이제 오래 걷지도 못한다.
가게에 도착해서 할머니가 최소 동선으로 걸을 수 있게 차를 내려드리고, 주차하고 가니 할머니 표정이 뚱하다. 고대하던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과 있는 내내 웃을 순 없다. 대개 그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지나고 나면 다시 존재로서의 '나'가 남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자식을 만났지만 이제 식사를 하고 돌아가야 할 곳은 다시 시설인 것이다. 그녀에겐 지나간 젊음과 과거가 어떻게 남아 있을까.
'할머니 어렸을 땐 어땠어?'라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묻자 할머니는 내 말이 잘 안 들리는지 '뭐?'라고 되묻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가 젊었을 때 더 할머니에 대해 물어볼 걸, 언제 할머니가 가장 기쁘고 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났고 이런 사소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