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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당연한 것이 할머니에겐 그러지 않을 때

by 강아

할머니는 이제 근육이 빠져 잘 걷지 못하신다. 그런 데다가 일을 아주 오래 해서 허리가 굽어 있다. 그런 할머니에겐 식사를 하러 가는 것도 일이라 모시고 가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엄마는 할머니를 보러 갈 때 아이가 된 것 같다. 내가 엄마한테 그러는 것처럼 '엄마 얼굴이 좋아진 것 같네'라고 말한다. 내가 봤을 땐 할머니가 그리 좋아진 것 같지 않는데 입에 발린 말이다. 엄마는 공치사가 편한 사람이다. 시가에서 온갖 악담과 막말로 상처를 입은 엄마는 절대 누구에게도 그 사람 입장에서 마음이 아플 것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기 전에 엄마 자체가 선한 사람이라 남에게 못되게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마음이 좋지 않다. 점차 안 좋아지고 있는 할머니를 애써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느끼기에 그런 거고 원래 엄마가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날은 엄마가 총천연색 조끼를 사서 왔다. 자주색 조끼에 잔꽃이 흩어져 있는 누빔에 목둘레에는 앙고라 모양으로 털이 박힌 옷이었다. 엄마는 '나는 디자이너가 됐어야 해'라고 말할 정도로 미감이 좋고, 나 또한 그런 그녀의 감각을 받음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옷은 봤을 때 첫눈에 어딘가 좀 촌스러워 보였다.


그 옷을 보고 할머니는 단번에 '안 입어'라며 거절했는데 솔직하게 말하기 정평인 할머니의 눈엔 안 입어도 될 날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식사를 하러 밖에 나갔을 땐 칼바람이 할머니가 입은 경량패딩을 뚫고 들어왔고 봉지에 넣어둔 그 조끼를 할머니가 주섬주섬 꺼내 입은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할머니가 입었을 땐 거짓말처럼 얼굴이 화사해져 버릴 만큼 잘 어울렸다. 역시 내가 틀리고 엄마가 맞았다.




가게 된 가게는 두 개가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할머니의 동선을 생각하던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드린다고 했는데 데크에 칸막이가 쳐져 있어 길을 돌아가야 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차를 해버려서 다시 차를 가져오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가고자 하는 가게로 할머니를 부축해 걸음을 옮기는데 한걸음 한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는 것조차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걷는 것이고 뒤이어 엄마는 '업혀 엄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할머니의 자존심상 허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차곡차곡 걸어서 식당에 착석했다. 내겐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걷기가, 할머니에겐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고 온 힘을 다해야 하는 행위임을 알았을 때 나는 늙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노화가 찾아온다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되지 않아 진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러기 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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