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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by 강아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말 따위는 한마디도 못하는 위인이라 막상 할머니에게 신나게 달려가면서도 만나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벙어리다. 대개는 엄마가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말하고 나는 가만히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다. 뭔가 말하고는 싶은데 그렇게 엉거주춤 앉아 있는 것이다.




그날은 엄마를 만나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가 내가 아픈 손가락이래' 엄마는 가끔 예상하지 못한 말로 훅 들어올 때가 있다.


이모의 딸, 그러니까 내겐 이종사촌인 집에 놀러 갔을 때 그녀는 내게 말했다. '어릴 때 어른들은 안 계시고 안방에 할머니랑 이모(내 엄마)가 얘기하는 걸 들었어. 그때 이모가 이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속상해서 그럼 하라고 하고 이모는 울고 그랬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걸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처럼, 머리를 쿵 얻어맞은 것 같았다. 엄마는 결혼생활로 힘들어했다. 아버지는 그때 우울이 있었던 것 같다. 안정되지 않은 직장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쯤부터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내 방에서 고통스럽게 듣고 있다가 하지 말라고 둘을 말렸지만 그건 마치 윤활유처럼 아버지의 화를 더 돋우는 것 같았다.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자신의 행위에 정당을 가하고 싶은 것처럼.


그땐 아버지의 화를 가장 잘 받아줄 사람이 엄마였던 것 같고 그때가 엄마가 할머니에게 이혼하고 싶다고 말한 시점인 것 같다. 나 또한 엄마가 아버지랑 이혼하길 바랐다. 하지만 사실상 전업이었던 어머니가 이혼하고 혼자 살아갈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고 엄마는 그때 버티는 방법밖에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할머니께 그렇게 이뤄지지 않을 마음을 보였던 것이고 그걸 들은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미었을까. 가난한 집에서 동네 사람을 만나 결혼시켰더니 맞고 돌아와 우는 딸이라면 나 같아도 아픈 손가락일 만했다.




시간은 지났고 지랄 맞던 아버지의 폭력은 경찰서에 신고함으로써 소강되었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의 재정적 도움엔 감사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단절상태이다. 이젠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늙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도 고생한 사람인데 생일은 챙겨야지'하면서도 막상 생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어머니를 때렸던걸 생각하면 다신 얼굴을 안 보고 싶다. 이젠 물리적으로 떨어지니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걸 보면, 그리고 그 시기를 겪어오며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아직도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런데, 할머니는 얼마나 그게 마음에 응어리져 섬망을 앓고 있으면서도 아픈 손가락이라 말했을까.


그렇게 엄마를 배웅하고 와서도 아픈 손가락이란 단어는 뇌리 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곤 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성인군자 부처도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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