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연습실에 갔다. 늦잠을 자버려서 머리도 못말리고 도착하니 약간 늦었고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평일엔 시간이 느리게 가는데 주말엔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동하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연습실은 얼음장같았지만 히터를 틀자 곧 따듯해졌고 도장깨기를 시작했다.
도장깨기란 한곡씩 완성하는 것이다. 그걸 녹음해서 인터넷에 하나씩 올리는데 집에도 피아노가 있지만 영창피아노와 야마하의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연습실에 갈때 한번에 녹음을 하고 오는 것이다. 연습을 하는건 행복한데 하다보면 허리가 아프긴 하다.
그래서라도 밥을 먹으러 가야한다. 걸어주지 않으면 허리가 계속 아프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것도 웨이팅을 걸어놓고 밥이 나오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입장하자마자 음식을 먹고 돌아온다. 항상 주말루틴은 점심은 쌀국수를 먹고 저녁은 한식을 먹는건데 쌀국수를 먹기전에 곡을 한곡 완성하고 업로드하니 더욱 상쾌했다.
겨울 초입이지만 날은 왜이리 좋은지. 편의점에서 1+1 커피를 아침에 원샷했는데도 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기분좋은 주말의 리추얼이다. 평소엔 커피를 건강때문에라도 사먹지 않지만 주말에는 특별하게 먹는다. 또 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 오후 연습을 계속했다.
타이리스 음악도 연습했다가 바흐도 연습했다. 도망가자를 부를때는 눈물이 날것만 같다.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나는 자주 도망가고 싶었다.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고 그럴때면 연차를 붙여 며칠간 해외로 가는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 가면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늘 혼자였다. 도망가자의 가사는 -너가 울것같다며 잠시 떠나자-라는 내용이었고 내게 그랬던 사람이 있었나,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소리에 민감한 내게, 평일에 가는 학원연습실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좋으나 다른 수강생의 음악소리가 거슬렸다. 집에는 사일런트라 어쿠스틱의 느낌이 안난다. 그래서 온전히 한 공간을 독점해서 쓸수있는 토요일의 연습실 시간은 내게 축복의 시간이다. 그렇게 쇼팽을 연주하고 있으면 올드보이의 주인공처럼 끼니만 제때 챙겨주면 그 공간에서 살수도 있을것 같다. 불필요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내가 미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어제보다 오늘 더 매끄러워지는게 좋았다.
단톡방에는 구순인 할머니의 끼니를 챙기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걸 보면 평생 일한 할머니는 재산도 결국 자식들 다 나눠주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인간의 삶이란 뭘까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결국 누구나 죽고 결국 삶을 살아온 태도마저 과거로 남는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떤 회한과 후회를 가지게 될까. 내 의지대로 살지 못한 삶일때 더욱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건 음악이다. 그럼 죽는대도 여한이 없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