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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솔직해?

by 강아

그는 열정적이었다.


그날은 지독히도 우울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그에게 최종판결을 받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갈 일이 있었고, 그래서 연정을 가졌던 이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는 그사이 '결혼할 것 같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걸 듣는 나를 고려를 하긴 한 건지, 그렇게나 너에게 고백했던 나를 병신으로 만드는 것처럼 그 결론은 잔인했고 사람을 맥 빠지게 했다. 나는 운전을 하며 그와 통화하며 '나 요새 요가하는데 차크라사 나가 처음엔 안 됐는데 될 때 너무 기뻤어'이런 말을 하면서 그가 '이제 씻어야겠네'라며 전화를 종료하려 하자 '그래야지'하면서 통화를 끊고 지독한 상념에 젖어있었다.


그동안 그가 해왔던 행동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는 왜 그리도 머저리같이 기다리기만 했는지 결국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은 내가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그가 결국 나를 친구로만 생각했던 것인 이유에서 일까 아님 여자로는 안 보였던 건가,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로 돌아가서 선택을 바꾼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은 동생 생일이었다. 인천공항까지 가서 동생을 만나야 했고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자리에 결국 차를 긁고 말았다. 새 차는 아니었지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차였고 많이 긁지 않았지만 마음은 아팠다. 물론 차는 고치면 되지만 목적지로 가면서도 헤비 한 EDM을 틀고 정신없이 갔던 건 내 정신상태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족과 간 식당은 바다로 4면이 둘러싸인 풍광이 좋은 곳이었지만 '오늘 이 자리를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같은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집에 있었다고 해도 오히려 수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을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날은 생리였는데 동생 집들이에 가서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니 혈흔이 묻어 있었고 그걸 또 손빨래를 하고 젖은 옷도 애벌빨래하다 피냄새가 나자 '오늘 일진 왜 이러냐'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도 가족 일정이 있어 이번엔 천안에 갔다. 천안에 간 이유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인데 아버지는 외가일에 관여를 안 하기 때문에 엄마를 모시기 위해 차를 끌고 가는 것이다. 물론 이전까진 그렇게 셔틀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날은 '아.. 어제도 가족 오늘도 가족. 내 가족이 생기면 가족으로 인해 생기는 시간의 부족함을 또 탓하려나'이런 생각만 들었다. 할머니를 보러 가자 치매인 그녀는 용케 내 얼굴을 기억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똥이 안 나와'라고 했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에게 '엄마, 아들들은 땅 나눠서 가져갔잖아. 이제 언니랑 나랑 남았는데 그 땅을 아들이 자기가 엄마 부양했으니 땅 팔아 나눠야 한다고 말을 한대. 그럼 안되잖아 공평하게 나눠야지. 그거 하려면 위임장이 있어야 된대 엄마'라며 치매인 할머니한테 재산 이야기를 했다.


이쯤 되면 혼란해졌다. 할머니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와, 얼마 되지 않는 재산으로 자식들 간 벌어지는 이권까지. 결코 우리 할머니는 부자는 아니었다. 그저 땅 몇 마지기로 자식들을 길러 먹여 살릴 정도만 됐었던 땅과 집이지만 그 적은 것으로도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집이 왜 자식들 간 칼부림이 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미 혼자 살 각오는 되어 있었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부담감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오늘처럼 가족에게 절대적으로 써야 하는 시간의 아까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건 나도 누군가가 필요하단걸 결국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쪽지를 보냈다. '넌 갖고 싶은 게 있는데 안 가져지면 어떻게 해?'라고 물은 건 내가 오래 마음에 품어왔던 그를 향해 한 질문이었다.

'누나 제가 오늘 당직이라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자아성찰하고 있었는데 누나한테 연락이 왔거든요.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과거 현재 미래 중에 제일 중시하는 게 과거거든요. 오늘 야식을 먹으면 내일 살이 쪄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될 때까진 최선을 다하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하.. 그럼 나도 J를 향한 마음을 접지 말아야 하는 건가'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는 '누나, 연락하고 지내면 안 돼요? 누나랑 아는 사이 하고 싶어요'


그는 톡아이디를 알려줬고 그러자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양천구에서 태어나서 자랐고요. 가족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동생이 있지만 걔는 독립해서 나갔고 저도 원랜 독립해서 나갔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왔어요. 부모와는 말도 안 해요. 제가 살이 많이 쪘거든요.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어서 지금 백 킬로예요. 돼지예요 돼지.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모은 돈이 없어요. 돈이 생기면 여자친구한테 다 쓰고 365일 중 360일 붙어 있거든요. 제 전여자 친구 중 하나가 비제이였거든요. 걔는 자기 나체 사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근데 남자문제로 많이 싸우게 됐는데 저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근데 그걸 얘기하다 보면 돈 얘기가 나오고 월 300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울 거냐부터 되는 거죠. 예전엔 여자 만날 때 헌팅으로 만났어요. 그땐 지금처럼 살찌지 않았으니까요.'


라며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지?'라고 생각할 무렵 '저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결혼이 엎어질 때도 현실적 이야기 나오면 안 되는 걸 보면서 정뚝떨이었어요. 저는 운명론자예요. 요새 이혼이 많은 이유도 서로가 조건을 보고 해서 그런 거고 저는 어딘가에 제 운명이 있을 거라고 믿거든요.'

라고 그는 말했다. '누나는 비혼이에요?'


'아 비혼은 아니고. 내가 최근에 접촉사고가 난 적이 있거든. 신호대기 중에 뒤차가 내차를 박은 거야. 그래서 보험접수하고 집에 가는데 말할 사람이 없는 거야. 가족 단톡방이 있긴 하지만 톡을 보내도 각자 일중이라 답이 없었고 그런 일상의 것을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게 허전하게 느껴져서 요새 좀 그런 생각이 들던 중이었어'라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근데 나 너무 졸리다'하고 종료할 때 즈음엔 2시였다. 평소 12시에 잠드는 나는 이미 2시간이나 오버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꿈나라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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