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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질서와 규칙

by 강아

방송에는 청취자들이 몇 있었는데 그중 로망이는 젠틀한 성격이었다. '모래님 오늘 왜 이렇게 웃어요?'라고 그가 말한 날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청취자로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너네들 때문에'라고 하면 '웃는 거 예뻐요'라며 좋은 말한 해주는 애청자였다.


처음에는 방송에서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한다는 게 자기 목소리를 본인이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데시벨이 얼마나 익숙지 않은지. 그런 것 때문에 채팅을 쳤고, 또 그건 너무 오래 걸렸고 사람들은 '모래님 손금 다 보여요'라고 뭐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을 정도로 샤이했던 나는 그걸 고수했다.


그 사이 들어온 큐큐는 리액션부자였다. 나는 워낙 건조한 성격이어서 농담 이런 것도 잘 못하고 그래서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사람을 점수를 높게 주는 편이었다. 아버지도 무뚝뚝했고 그래서 다정다감하고 위트가 있는 사람을 선호하게 됐는데 그는 옆에서 계속 깐족이는 스타일이었다.


그걸 싫은 듯이 말했지만 사실 그게 좋았다. 방송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오픈하게 되고 그런 것으로부터 오는 희열이 있었다. 현대인들은 자기를 대개 너무 죽이면서 사니까, 자기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된 것이다.


'나는 말이 없어. 대화를 할 때도 주로 듣는 편이야'라고 말하자 청취자들은 또 나불댔다.

'그럼 상대방도 말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럼 그냥 조용히 있지'

'모래님이랑 만나는 사람은 말이 많아야겠다'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것이었다.




주로 바흐를 쳤다. 바흐의 명징함과 질서, 과하게 꾸밈을 넣지 않는 것이 나와도 닮은 것 같아서 골드베르크 변주곡부터 치기 시작했다. 처음 골드부르크 책을 사서 초견을 하는데, 왼손과 오른손이 뒤섞여 헷갈리고 음표도 낮은음자리표와 높은 음자리표가 섞여 손의 위치도 애매했다. 처음에는 레슨샘에게 그 곡을 받겠다고 했다가 레슨을 받는 건 다른 곡으로 하고 goldberg는 자습하기로 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더듬거리던 것이 나중에는 어느 정도 들어줄 정도가 되었고 그렇게 매일 치다 보니 방송에 누가 들어와서 만원을 후원했다. 물론 거기서 반정도는 수수료로 떼가지만 그 느낌은 참 이상했다. 음악가들은 알고 보면 청중이 내는 돈이 수익금이 되는 건데 그렇다면 내 음악의 가치는 만원인 걸까 의아하기도 하고 기분이 그랬다. 물론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는 다음에 다시 들어와서는 '제가 본 사람 중에 3손가락 들게 이쁘신 거 같아요'라며 '방송 계속하실 건가요? 없어지면 서운할 거 같아요'라고 하며 몇 번을 더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레슨샘이 급하게 시간일정을 바꾸게 되며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그때 급히 방송을 끄게 됐고 그는 그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그도 그 정도로 나를 생각했다고 생각하니 아쉽지 않게 됐다.


골드베르크를 치자 토카타도 있었고 어릴 때 쳤던 인벤션도 있었다. partita는 곡의 슬픔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걸 연주하는 동안은 잡생각이 들지 않았고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는 느낌이 꽤나 특별했다. 그렇게 나는 누가 들어주지 않을 때에도, 물론 그런 때도 항상 듣는 '영어닉네임'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내 연주에 대해 이렇다 저렇게 평을 해주지 않아 편안하기까지 했다.


'누나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라며 그는 내가 반주에 맞춰 부르는 현대음악도 모두 그냥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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