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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Aug 29. 2021

함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걸음을 멈춘 덕분에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만났던 모든 순간을. 그의 선택들과 나의 선택들을...
그에게 가졌던 모든 마음들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전 이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으로...
<미스터션샤인 12화, '고애신'의 대사>


돌아갈 수가 없다...


나는 낯선 이와의 만남, 새로운 경험에 매우 신중하다. 설렘보다 걱정스러움이 크다.

'호기심 혹은 생활의 활력'으로 단순히 접하기엔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간혹, 새롭게 접한 것들이 나의 과거를 '헛헛하게' 만들 때가 있다. '이게 정답인 줄 알고 열심히 살았는데, 아니었구나...' 깨닫는 순간 그렇게 내가 바보 같을 수 없다. 그동안 내 노력을 한순간에 '뽁!'하고 비눗방울처럼 터뜨리는 것 같다. 실패에서도 배울 것이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다. 대부분의 과거는 아름답게 포장되니깐... '실패한 과거'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착각일 수도 있다. 최소한 나의 노력이 의미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은 멍하고 분하다.


그래서 나는 '정돈되고 계획된 삶'을 추구한다. 같은 것을 두 번 반복하기 싫어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익숙함'을 추구한다. 안정된 생활에서만 내 몸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몸이 편안해야지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머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난 가급적 정리된 내 구역 안에서 생활하려고 한다. 


연세 많으신 노인 중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는 분들에겐 간혹 '건강검진'이 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의 암세포와 달리 노인의 몸에 암세포가 생긴 경우, 그 전이율은 청년에 비해 매우 더디다고 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병을 모르고 살다 가실 수도 있는 노인이라도 자신의 병을 아는 순간 바로 환자가 되고 죽은 사람이 된다고 한다. 때론 모르는 체 사는 게 약인 것들이 많다.


하지만, 철벽같이 방어했다고 생각 한 내 생각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는 '새로움'이 있다. 새로운 사람, 몰랐던 것들, 낯선 생각... 그들이 다녀가면 한동안 멍하다. 나에게 그것들은 신선하고 즐거운 게 아니다. 


모르고 살았던 것들, 몰라도 됐던 것들은 끝까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함부로 경험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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