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9-sXWXpWT_w
나이트오프(Night Off) - Nevertheless (알고있지만)
늘 두근거리는 마음이 나에겐 아직 어색하고 낯설어 잘 모르겠어요.
그대 나를 안고 싶다면 그렇게 말해요. 이런 복잡한 놀이로 날 흔들지 말아요.
나는 매일 밤마다 네가 싫은 이유를 생각해보다 잠이 들지만
넌 꿈 속에서도 웃으며 나를 안고 어지럽게 해.
너는 나쁜 사람이야 또 나쁜 사랑이야 내 맘을 다 가져가고 네 맘을 주진 않니
나쁜 사람이야 또 나쁜 사랑이야. 내 맘 가지려면 그대의 마음도 줘요.
네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 게 난 좋은지 또 싫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대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해봐요. 이런 알 수 없는 말들로 피하지 말아요.
가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선선한 바람만 느껴져도, 기억력이 허락하는 범주 속 모든 추억이 떠오르는 가을입니다. 추억과 함께 노는 저, 이래서 늘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나 봅니다.
올해 가을은 유독 힘들 것 같습니다. 제게는 낯선 단어인 '가을장마'때문입니다. 예년 같았으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오는 강력한 태풍 덕분에 쓸쓸하다는 감정보다는 생존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었겠지만, 올해는 유독 잔잔한 비가 자주 내리거든요. 조용히, 보슬보슬, 자주 내리는 덕분에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현재'에 집중하기가 참 힘드네요.
그런 와중에 직감적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접하게 됐습니다.
응답하라 1988 : 10번 , 응답하라 1994 : 7번, 미스터 선샤인 : 5번, 나의 아저씨 : 5번...
드라마에 한번 빠지면 기본 5번은 정주행하고 단정한 엄마의 마음을 유지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저는 가급적 새로운 드라마를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듣게 된 OST에 마음이 닿았습니다.
꿈속 같은 사랑으로 이끄는 몽환적인 목소리...
너무 사랑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감히 바라지 못하는 수줍고 지레 단념한 마음...
'매일 밤마다 네가 싫은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결국 또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
웹툰이 원작인 '알고 있지만'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학생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젊은이들의 이야기.('젊은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적고 보니 제가 정말로 더 이상 두근거리는 사랑은 없는 '중년'임이 느껴집니다.)
항상 함께여서 '사랑한다'는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던 사랑, 동성이라는 이유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숨겨야 됐던 사람, 그리고 심장에 해롭고 비현실적이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사랑 이야기를 작가는 아주 세밀하게 표현했습니다. '시청자(독자)' 모두를 스스로 사랑의 초입 단계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썸을 탈 때 느끼는 설레임과 기다림도 저의 것이 됩니다. 애매하고 치사하고 부끄럽지만 애틋한 감정을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내가 보낸 카톡을 학인 한 것 같은데도 왜 답이 없는껄까?
답답해 미치겠지만 먼저 연락하기는 싫은 빌어먹을 자존심.
그 사람이 나에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의 실망감과 애써 서운하지 않은 척하는 서툰 나.
한 사람과의 깊은 사랑이 두려웠던 청년의 심정 변화.
모든 주인공의 갈등과 망설임은 젊은 시절의 딱 '제 마음'과 같았습니다. 드라마 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심장이 해로울 만큼'의 멋진 배우들(한소희, 송강, 김민귀, 이호정, 양혜지)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니 '저 같은' 사람의 가슴앓이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 위로가 됩니다. '나만 왜...'에서 '당연했었구나.'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렇게 비현실적인 사람에게도 사랑은 힘든 것인데 평범하다 못해 못나빠진 제가 사랑 따위를 하려고 했으니 당연히 나름의 아픔이 있었던 거지요.
'작가의 세심한 글과 주인공들의 갈등을 예쁘게 담아준 연출, 공허한 마음을 잘 표현한 음악' 덕분에 여자들 간 우정을 넘은 사랑도 거부감 없이 스며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은 네가 '남자 혹은 여자'였기 때문이 아니니깐. 그냥 '너'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풋풋한 여대생 간의 사랑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도무지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남자보다 나으려나?'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얼마 전,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가 포기했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너무 당연한 내 사람(더구나 아들까지 있을지 빼도 박도 못합니다.)과 오랫동안 있다 보니 두근두근하고 설레는 마음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음악에 이끌려 보게 된 '알게 됐지만'은 제게 설레는 감정을 다시 일깨워 준 드라마입니다. 10회에 달하는 각 회차의 제목만으로도 한 참을 생각하게 만들고 멍하게 만드는 드라마지요.
운명 따위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나만이 아닌 걸 알고있지만,
이미 시작돼 버린 걸 알고있지만, 사랑은 아니란 걸 알고있지만,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사랑 따위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거짓말이란 걸 알고있지만,
이미 끝이란 걸 알고있지만,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간이라고 하더니 오늘이 딱 그렇네요.
원래 10분 전만 해도 이 글의 마지막을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알았던 X 놈들에 대한 추억으로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 앞 고인 빗물에 내 신발이 더러워질까 봐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깨끗한 곳으로 옮겨 준 X.
도대체 군대에 훈련받으러 간 건지 편지 쓰러 간 건지 헷갈릴 정도로 무려 3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줬던 X.
체 한 것 같다는 한마디에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본죽 도시락을 걸어두고 멋지게 돌아섰던 X.
그런데 방금,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서툴었던 업무처리로 과장님께 늘 혼이 났던 저를 위로해주던 사람들은 점점 '서진이는 왜 맨날 혼나지'라며... 저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외로워졌던 저를 위로 해 주신 분은 바로, 그 선배였습니다. 마치 또 다른 저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해 준 선배였습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후, 선배는 제게 꽃을 보내주셨습니다.
"집 근처 꽃집에서 예뻐서 샀는데 서진이가 생각나서 보내. 힘든 시간을 이겨내니 이렇게 예쁘잖아!"라고 말해 준 선배! 하느님께는 그 선배의 남편이 '예쁜 꽃'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일찍 곁으로 데려가신 거겠죠?
선배의 비보를 들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많은 갈등과 고민, 주변의 반대가 있었고,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실하지만 부유하지는 않아서 함께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분위기 잡는 것 못하고 위로하는 것에 서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많아서 먼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못하고 제가 선택한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습니다. 항상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도 못 느끼는 사람. 남편은 그다지 예쁘진 않지만, 제게는 소중한 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눈에 일찍 들지 않도록 소중하게 꼭꼭 숨겨야 될 저만의 꽃이죠. 어떻게해서도 헤어질 수 없었던 우리.
이것으로 드라마 감상평을 마치려고 합니다.
혹시, 아직 <알고 있지만> 드라마를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이 가을이 끝난 후 보시거나요. 저처럼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