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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Apr 21. 2021

나도 내 아들 못 키웠는데...

안타깝게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맞다.


나에겐 시부모님이 안 계신다. 결혼하기 전에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뵌 적 없다. 

시어머니 한 번 뵌 적 없는 내가 이 문장을 떠 올린 건 바로, 나의 좁아터진 소갈머리 때문이다. 

심리학 책과 성경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넓어지길 바랬것만, 갈등 상황이 오면 늘 최소한으로 수렴하는 내 소갈머리가 나도 싫다. 그렇다고 또 내 소갈딱지가 너무 좁아터졌다고 오해받지 않도록 급하게 이유 하나를 더 대자면 친정엄마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때문이다.


글 실력이 모자라서인지, 꼴에 15년이나 되는 경력 탓인지 직장 관련 글을 쓰려고 하면 '~라떼'를 적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대놓고 '~라떼'로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아기를 낳았을 때는~ 

2011년에 둥이를 낳으면서 육아휴직이 시작됐다. 사회생활 시작 몇 년 후부터 바라고 바랬던 육아휴직! 

일 안 해도 되고,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월급까지 일정기간 나오다니... 너무 꿈같은 얘기로만 들렸다. 

역시 지금보다 그때의 난 철이 더 없었다.


역시 육아휴직 기간은 놀고먹는 게 아니었다.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온 그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던 것이 깡그리 사라졌다. 낮에 놀고 밤에 자는 게 아니라 낮에도 밤에도 심지어 새벽까지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육아서적에서 배우고 귀동냥으로 들은 대로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대령해도 둥이는 계속 힘들게 울었다. 며칠이 후 둥이와 나는 함께 울게 됐고, 결국 친정엄마가 지원군으로 오셨다.

그 전에도 친정엄마는 늘 내 곁에 계셨다. 다만 바뀐 게 있다면 엄마의 출근시간이 오전 9시에서 새벽 7시로 앞당겨졌고 퇴근시간은 아예 사라졌다는 거였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가끔 까먹고 살 때가 있다. 어쩌다 마음대로 안되고 속상하면 울면 그뿐이다. 그러면 또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내가 참으면 되는 게 아니었다. 속상하고 힘든 것을 참아야 하는 대상이 둥이로 바뀌었다. 나의 불편한 몸으로 인해 둥이가 편하게 우유를 먹을 수 없었고 깊게 잠잘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서도 혼자 야무치게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도 많이 봤다. 그분들의 속상한 마음과 힘든 육체에 비하면 그 당시 내가 둥이에게 가졌던 죄책감과 안타까움은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그땐 나도 둥이도 힘들었다.


그래서 낮에는 엄마가, 밤에는 남편이 둥이와 나를 케어했다. 엄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모유수유 외 아기 목욕, 밤에 잠재우기, 기저귀 갈기 등은 거의 두 분이 도맡았다. 그렇게 둥이와 단 둘이 하루도 보내지 못한 채 1년이 지났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던 날이 딱 하루 있었는데 그땐, 시댁 큰 형님께서 와주셨다. 남편이 나와 둥이 단둘만 남겨놓기에 걱정된다고 큰누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니가 둥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어차피 아기한테 메어야 되는데... 복직해서 일하는 게 어떻겠니?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넌 복직 해 돈 벌면 둥이한테 좋은 거 사주면 돼. 가끔 나한테 용돈도 주고."

맞는 말씀이었다. 둥이를 낳는 건 엄마인 내가 했지만, 제대로 돌볼 수가 없어 점점 자괴감에 빠지고 있었다. 당장 복직을 결심했다. 공무원은 3년까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지만 10개월 만에 복직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돈이라도 벌자... 고 생각했다.

나도 내 아기를 키우고 싶었는데, 아직 너무 어린데...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 마음 살피자고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복직 후 근무경력이 쌓일수록 업무 강도도 높아졌다. 야근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업무 특성상 불시에, 갑자기, 지금 꼭! 해야 되는 일이 생기면 몇 배는 힘들었다. 육아는 일정한 시간이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할 수 있는데 점점 더 어려워졌다. 퇴근 10분 전, '전 직원 대기' 지시가 내려오거나 새벽에 갑자기 불려 나오거나... 뜬금없는 연휴 전 자료제출 요구 등... 


  "엄마 미안해, 오늘도 갑자기 일이 생겨서 늦어."

  "내일 새벽에 일찍 나가야 되는데 우리 집에 일찍 와줄 수 있어요? 미안해 엄마."

  "엄마 오늘 계모임 있다고 했는데... 못 가서 어떻게? 미안..."


일, 가정 양립이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것이지 궁금했다.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 보니... 어느덧 후배들도 생겼고 사무실 내 자리는 한 칸 앞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우리 둥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바빠서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못 갔지만...


세 살짜리 여자아이를 키우는 후배 A가 우리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이제 내게 '세 살의 아이'는 '키가 큰' 직원,  '얼굴이 예쁜' 직원, '머리가 긴' 직원처럼 그저 개인의 특징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난 사소한 개인 사정으로 부서의 목표와 계획을 지연시키거나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작은 꼰대가 됐다. 


나도 그랬으니깐... 그렇게 살 수 있고, 아이도 자랄 수 있다는 걸 나와 내 아들이 몸소 느꼈으니깐...


'단축근무제, 유연근무제'  워라벨을 지원하는 정책은 있었지만 형식적이었다.

단축근무를 사용한다고 윗분들 눈치 보며 어렵게 결재를 받아도 퇴근시간이 다 돼 우수수 떨어지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초과근무 인정시간마저 넘기기 일수였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는 단축근무를 쓸 엄두를 아예 안 내게 됐다.


그런데 새로 온 후배는 그렇지 않았다.

   "저 오늘 단축근무인데, 내일 와서 하겠습니다.!" 

    :  자료를 빨리 줘야지 보고서를 완성하는데...

   "친정엄마가 일하러 가셔야 돼서 좀 일찍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 우리 엄마는 일 그만두고 손주 보시는데...

   "딸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데리고 가야 돼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 아니... A 씨 친정엄마는 애를 봐주신다면서 병원에도 못 데리고 가시나?

 

후배가 한마디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혼자 대꾸를 했다.

후배가 '육아'와 관련된 혜택을 누릴 때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샘하듯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더구나 군더더기를 뺀 너무나 깔끔한 말투가 더 얄미웠다.

  "죄송한데, 저 오늘 단축근무인데, 내일 와서 하면 안 될까요?"가 아니었다.

나는 왜 그동안 '죄송한데, 미안한데요...'라는 왜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일까?

왜 안하도 되는 말만 잔뜩 하고, 해야 되는 말은 못 했던 걸까?


얄밉긴 하지만, 후배에게 육아시간을 쓰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복무규정에 명시된 제도를 사용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타인에게 미안해야 될 이유는 없다.


나도 업무를 가정보다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진 게 아니며,

단지, 나도 후배처럼 하고 싶었는데 말을 못 해 혜택을 못 본 것뿐이니까.


엄마가 마음 놓고 일하며 아이를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이 있다. 

육아휴직제도, 단축근무 및 유연근무제, 아이돌보미, 보육비 지원, 각종 바우처 등


엄마인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정책은

첫 번째, 엄마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예를들면, '어린이집 종일반'은 지금의 조직 문화로 보면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새벽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아이를 맡기고 싶진 않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이를 대부분 불 꺼진 어린이집에서 하루 업무를 정리하는 선생님 옆에 혼자 놀게 하고 싶진 않다. '어머니, 다른 아이들은 보통 일찍 집에 가요. 00 혼자 남아 있는데 괜찮을까요?'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어린이집 교사도 누군가의 엄마일 텐데 우리 아이로 인해 그 아이를 엄마랑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


그냥... 엄마가 아이를 볼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엄마의 경제활동과 아이의 교육이 끝난 시간, 햇님이 집에 갈 시간이면 따뜻한 가정에서 엄마랑 아이가 함께 해 줄 수 있도록만 해주면 된다.


두 번째, 이미 마련돼 있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미 있는데 정착되지 못한 제도로 인해 조직원 간 갈등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후배도, 후배의 딸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마다 항상 갈 수는 없다.

다만, 나의 선배 엄마들이 열 번 중 한 번만 갔었다면, 나는 세 번쯤 아이에게 갈 수 있었고, 후배는 다섯 번쯤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조직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을 두고 봤을 때, 한 번에서 다섯 번으로 가능성이 늘었다. 개인의 눈물과 미안함, 눈치로도 저만큼 증가했는데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고용주가 적극 노력한다면 나처럼 소심한 사람의 아이도 엄마와 함께 있을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작은 꼰대는 후배에게 한 방 먹고, 한 가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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