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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May 01. 2021

퇴근 후,
취미생활 하시나요?

퇴근 후 취미를 즐기는 여유로운 직장인!

자기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업그레이 중인 직장인!

스스로 시간과 행동을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만족감!


위 세 가지는 입사 시험에 최종 합격한 예비 직장인 혹은 취준생이 꿈꾸는 이상적인 직장인의 모습이다.


15년 전, 나도 꿈꿨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보장된 현재 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으로 평생 직업을 선택한 나를 원망했다.


직장생활과 취미생활을 병행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첫째, 근무시간이 유동적이라 시간 약속을 잡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월급쟁이는 9 to 6 시스템이지만,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직장은 많지 않다. 

공무원도 알려진 것처럼 안정된 근무시간이 아니었다. 불시에 지시사항이 떨어지거나, 비상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매우 많다. 늦은 밤, 비상 문자 한 통에 애는 친정엄마 집에 던져놓고 출근해야 되거나 퇴근 전, 전 직원 대기 쪽지로 발이 묶인다. 취미생활을 위해 안정적으로 확보 가능한 간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그룹수업에서 개인 레슨으로 바꿨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업무로 레슨 시간을 변경하고 연기하다가 수강기간을 통째로 날린 후부턴 수강권을 등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둘째, 하루 종일 근무하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돼 그 무엇도 하기 힘들다.

전화 통화로 2시간째 욕만 하는 어르신(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전화를 끊을 권리가 없다.), 윗분들 지시사항 처리, 하루 종일 많은 직원들과 근무를 하다가 퇴근을 하면 긴장이 풀려 진이 쫙 빠진다. 정부 중앙부처, 세종시 청사는 출입자 통제가 엄격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인 나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모든 사람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개방형 사무실이다. 주로 민원업무가 많은 하위부서, 일선 행정기관의 기능과 특성을 충분히 알지만, 어쨌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대화는 나를 지치게 한다.

특히나 나는 혼자 있을 때 휴식할 수 있는 유형이라서 낯선 사람들과 하루 종일 부대낀 후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으로 가 꼭꼭 숨어있고 싶다. 


셋째, 나이가 들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젊었을 땐 나의 소중한 '자아'가 최우선이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속 얘기에 귀 기울이며,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고 실제로 행동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니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남편, 가족, 소중한 아이... 너무너무 많다. 나의 시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친정엄마의 금쪽같은 노후를 포기한 대가이다. 당장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도 아니고, 수입 상승과 관련 없는 '취미' 따위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다.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가 친정엄마를 퇴근시키고, 아이와 놀거나 숙제를 챙겨줘야 된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면 엉망진창 전쟁터가 돼 있는 집 정리도 해야 되는 나에게 '고상한 취미활동'은 당치도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변변한 취미생활 없는,

'집-회사-집-회사'를 무한 반복하는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됐다.


완벽한 일처리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정받는 직장인!

눈치 보지 않고, 깔끔한 칼퇴근!

벨리댄스, 필라테스, 폴댄스...로 다듬어진 날씬한 몸매!

꽃꽂이, 와인, 바리스타... 등 교양 있는 직장인!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리고 상큼하다. 


공부를 잘하면 사교성, 예체능, 외모 등에서 부족한 점이 있어야 세상이 공평함을 알 수 있고...

타고난 활발함으로 어느 곳에 있어도 분위기를 UP! 시킬 정도의 사교성이면 공부가 부족해야 나 같은 사람도 쓰임이 있을 텐데...


80년대 후반부터 태어나신 후배님들. 정말로 부럽다........

 '저것도 한때지. 결혼하고 애 낳음 취미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해봐도 완전히 내가 진 것 같다. 몇 년 더 오래 근무한 경력이라도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1982년생이다.

출생연도로 보면 몇 년 차이 나지 않는데, 왜 MZ세대와 나의 괴리감은 10년은 더 되게 느껴질까?


왜 내가 못 누리는 취미생활을 그들은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걸까? 

세대차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취미생활을 계속하기 힘든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함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취미가 특기로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인내와 한계를 뛰어넘을 용기. 비록 못하지만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를 토닥여 줄 용기가 없었다. 


나는 재즈 피아노를 좋아했다. 

클래식 피아노와는 다르게 코드 몇 개만 외우면 근사한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멋져 보였다. 속도가 빠르고 화음이 많이 들어간 클래식 곡도 코드로 편곡하면 쉽게 칠 수 있게 돼 좋았다. 첫 월급을 받자마자 야마하 키보드를 구입했다. 집 근처 재즈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고 열심히 다녔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세 달도 못 넘기고 그만뒀다. 몇 년 후, 다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지만 딱 그 진도에서 그만뒀다. 

내가 넘지 못한 벽은 '재즈 솔로'다. '재즈 솔로'란, 코드의 음을 자유롭게 연결하여 연주를 이어가는 것이다. 

반주는 코드를 외워 멜로디에 맞는 반주만 하면 된다. 반면, 솔로는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야 된다.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처럼, 내 솔로 라인을 선생님한테 선보이는 게 무척 부끄러웠다. 심지어 혼자 연습할 때도 부끄러웠다. 내 손이 치는 음을 내 귀가 듣는 것뿐인데도 용기가 나질 않아 마음속으로 음을 상상하기도 했다. 내가 만든 멜로디가 낯설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번만 떨쳐버리면 됐는데 결국 포기했다. 용기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변변한 취미생활이 없는 자신을 포장하며 살고 있었다.

 '일하니까 바빠서, 돌봐야 할 가정이 있어서, 아들을 키워야 돼서...'

억지로 만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내가 용기가 없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게 됐다.


우연히, 같이 근무하게 된 MZ세대 덕분에 깨닫게 됐다.

MZ세대의 취미생활은 회사 업무와 윗세대의 생활을 무시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얻은 게 아니다. 

한 가지 취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인내와 고비를 넘을 수 있는 용기 덕분이다.


마흔, 아직 젊은 나이니깐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봐야겠다!

내가 꿈꿨던 '퇴근 후 취미생활을 즐기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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