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진 Apr 04. 2021

전 커피 안 마시는데요?

(커피 마시는 니가 직접 사 오세요!)

 나의 커피 적정량은 이틀에 세잔, 최대한 하루에 두 잔이다. 이보다 더 마시면 어김없이 밤에 탈이 난다. 새벽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멍하여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나면 다음 날부터는 악순환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밤엔 잠 못 자고, 또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버티다가 주말이 되면 그 악순환을 깨기 위해 반나절은 침대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래, 꼭 커피는 하루에 최대 2잔이야! 오전 10시쯤 한잔, 오후 3시쯤 한잔!!'


 다시 시작된 월요일! 여유를 부리기 위해 7시 30분쯤 도착했는데, 신문에 기사가 나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해명자료, 보고자료를 만들고 나니 어느덧, 8시 45분 ㅠㅠ 아침에만 가질 수 있는 고요한 내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팀장님의 말씀,

  "유니씨, 고생했는데 커피 한잔 사줄게. 같이 가요! 한잔 마시고 업무 시작합시다."

  그렇게 한잔이 시작된다.



 오전 10시 30분!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 언니가 업무협의 차 옆 부서에 들렀다 간다고 인사하러 왔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수다를 떨 순 없으니 3층 구내매점 안에 있는 작은 커피숍으로 이동하여 20분 정도 선배와 얘기를 나눴다. 커피 두 잔째!(하루 최대 카페인 섭취량)


 드디어 점심시간! 오늘은 팀에서 과장님을 모시는 날이다. 우리 부서는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는데, 하루씩 번갈아가며 과장님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다행히 과장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라 함께 밥 먹는 게 부담스럽진 않다. 모처럼 즐거운 점심시간에 커피가 빠질 리 없다. 더욱이 과장님께서 직원들 고생한다고 사주시는 커피라 새벽에 잠을 설치는 것 따윈 새카맣게 까먹고 기쁜 마음으로 또 마신다. 커피 세 잔째!(여기서부턴...'오늘은 이미 버렸구나'싶어서 세는 걸 포기한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고 오면... 그날 저녁은 눈은 말똥말똥한데 정신은 흐릿한, 이상한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업무는 물론이고, 커피처럼 사소한 것까지 윗 분들의 의중을 따르는 것이 조직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다 보니 스물네 살이었던 아가씨는 마흔 살의 애엄마가 됐고 어리바리한 신입은 중견관리자가 됐다. 조직의 규모나 업무의 중요도,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와 관계없이 한 조직에서 꾸준히 버티며 내 자리를 구축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됐다.


 그런데 최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던 나의 자부심이 쪼그라들고 있다. 타이어에 실 펑크가 난 듯 아주 조금씩 작아질 때도 있지만 바늘에 찔린 풍선이 펑! 하고 터져 버리는 날도 있다. 문제는 그 원인이 너무 사소해서 드러내 놓고 막기에 민망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커피'처럼 사소한 것이다.

 새벽부터 출근하여 긴급 지시사항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빼고 나면 정규 업무 시작 전 기분 전환을 위해 카페인 섭취가 필요할 때가 있다. 추가 지시사항을 대비해야 되므로 선임들은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막내들이 커피를 사 오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우리 과 서무님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일화씨, 커피 안 드세요?" 

  "전 커피 안 마십니다..." (들리는 말 : 난 커피 안 마시니깐, 마시고 싶은 니들이 알아서 하세요!)

 순간 '얘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 16년 만에 저렇게 깔끔하게 답하고 대화를 먼저 끊어버린 후배는 처음이었다. 

  '서무가 커피를 마시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커피 주문받아서 사 와야 하는 거 아냐? 근무시간도 아니고, 더구나 업무도 아닌데 뭐라고 할 수도 없는데... 근데 이건 막내의 기본 아닌가? 쟤는 기본도 안 배우고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야! 어랏! 근데 저렇게 대놓고 거절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네?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아, 그런데 어쩌지?? 쟤가 안 가면 내가 가야 되는데... 아... 가기 싫은데...'

  결국... 과장님, 팀장님 외 고참 2명, 내꺼까지 총 다섯 잔의 커피를 캐리어에 담아 흘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들고 온 건 나였다. 고참들은 요즘 애들은 조직생활을 모른다며... 언제 기본부터 가르치겠냐며 얘기했지만 마지막 말이 귓가에 계속 맴맴 돈다. 그 말속엔 내가 없었는데, 왠지 나를 바보로 만드는 듯한 말이었다.

  "근데 저렇게 분명한 애들이 일은 야무지게 한다니깐!"

  순간, 나와 같이 애매한 후배들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고참들과 개연성이 없으면 1도 움직이지 않는 후배들 사이에 완전히 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샌드위치가 돼 버렸다. 

난 앞으로 직장생활에서 노선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전 01화 간당간당한 MZ세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