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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May 17. 2021

간당간당한 MZ세대!

내 몸에도 MZ세대의 피가 흐른다.

 대학교 졸업 전, 비교적 어린 나이에 공직사회에 들어왔다. 

입사 후 5년 간  부서에 신규가 들어와도 나이는 내가 제일 어렸다. 동기들은 모두 언니, 오빠였다. 직원들 평균 연령이 높은 조직에 근무하며, 나이가 많은 동기 언니 오빠들과 지내다 보니 어느덧 내가 기성세대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한 번씩 속에서 확! MZ세대의 기질이 나올 때가 있다.


 4년 전, 사업소에서 근무할 때다. 내가 속해있는 총무부에는 총무팀, 기획예산팀, 회계팀, 보상팀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싹싹하고 똘똘하면 총무팀이나 기획예산팀으로 배치됐고, 나머지는 회계팀과 보상팀에 배치됐다. 그중 대규모 집단민원에 응대할 수 있을 것 같고 현장 업무에 적합한 직원은 다시 보상팀으로 걸러졌다. 내가 속했던 회계팀은 말 그대로 '일개미' 들의 집합소였다. 주어진 업무를 조용하고 착실하게, 엉덩이 오~래 붙이고 근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도로교량, 하수도 공사는 보통 계약금이 몇천억 이상, 계약기간이 10년인 것도 있으므로 계약법을 잘 숙지 해 소송에 휘말리지 않고 채권 민원이 생기지 않도록 처리할 수 있는 브레인을 배치한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듣기엔 위로도 안 되는, 들으면 더 화를 돋우는 말이었다.


 12월 말은 회계팀 전 직원이 철야근무를 할 정도로 매우 바쁜 시기다. '저녁 먹고 12시 넘어까지 일하고 집에 잠시 가 눈만 붙이고 출근하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총무팀 직원과 기획예산팀 직원 중 에이스 몇 명이 부장님을 모시고 저녁 회식을 하러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 누구는 열심히 야근하는데, 누구는 술 마시면서 돈 벌고... 참 좋~겠다.

  훈) 할 일 없이 남아서 술 마시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넌 아마 저거 하라고 하면 안 한다고 집에 갔을 거잖아. 일 없으면 집에 가는 스타일이잖아. 그래서 넌 회계팀에 있고 쟤들은 저기 있는 거야.


 훈이는 나보다 직급은 낮았지만, 나이가 많아 사회경험이 많은 오빠였다. 한 번씩 얄밉기도 했지만, 틀린 소리는 안 하는 츤데레 같은 후배님이었다. 열심히 계약금액을 계산하면서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긴 맞다.


 일이 있거나 계획된(나의 의지가 반영된 '계획'이 무척 중요함) 야근이면 불만이 없는데, 갑자기 불필요한 회식이 잡히거나 불시에 업무 지시가 떨어지면 가슴속에서 불 같은 홧덩이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일이 없으면 당연히 퇴근 해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오후 6시 이후는 엄연히 내 시간이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남편도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남편) 네가 조직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봐.  솔직히 네가 그럴 생각이 없어서 안 하는 거겠지만 윗분들 심기를 잘 살피는 센스나 회식 때 분위기 띄우고 언제든지 콜 하면 응할 수 있는 직원은 아니잖아. 그런 거 하는 직원들도 집에 일찍 가고 싶은 거 참고 다 하는 거야. 걔들도 일하는 거라고. 이도 저도 아닌 네가 할 수 있는 건 남들보다 힘들고 오래 일해야 되는 곳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거야. 아마 힘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도 넌 또 그런 곳으로 가게 될 거야.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뭔가 손해 보는 것 같긴 하지만 '인사배치가 허투루 된 건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이미 일이 없으면 퇴근하는 직원으로 찍혔던 것이다.


 사업소에 있다가 본청으로 옮겼다. 

처음 겪어 본 본청 생활은 굉장했다. 8월 말부터 12월 초까지는 내년도 본예산 편성과 행정사무감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예산편성과 의회 대응 담당자인 나는 주말은 물론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며 일을 해야 됐다. 


 11월 20일, 나의 결혼기념일은 의회 상임위원회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저녁 11시에 집에 들어가니 남편은 아이와 함께 잠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말도 못 한 채 결혼기념일이 지나갔다. 

12월 9일, 내 생일은 본예산 편성을 위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가 있는 날이었다. 새벽 0시 30분에 의회가 끝나는 바람에 생일에 외박을 했다. 


예결위가 끝나자 선배가 말했다. 


 선배)와! 이렇게 밤을 새우면서까지 의회가 열린 적은 거의 없는데 역사적인 날에 내가 있게 돼서 너무 뿌듯해!


난 선배 말을 듣자마자 욕을 했다.(물론, 마음 속으로지만...) 예산 편성안은 한 달도 전에 나온 자료고, 그동안 그렇게도 많은 서면자료와 대면 설명을 통해 많은 심사를 거쳤다. 그럼에도 이렇게 밤을 새워야 되는 이유는 공무원 군기를 바짝 잡겠다는 의원님들의 괜한 심술이 8할은 넘을 텐데 이런 폐단을 고칠 생각 안 하고 개고생 한 걸 영광스럽게 생각하다니 ㅠㅠ 토 할 것 같았다.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예산편성 작업이 끝났다. 몇 달간 이어진 야근에 너무 피곤했다. 오후 6시 10분쯤, 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퇴근했다. 다음 날 새벽에 회의가 있어서 7시 30분에 출근했는데, 팀장님께서 나와계셨다.


 팀장님) 00 씨, 어제 일찍 가던데 집에 무슨 일 있어요?

 나) 어제 일찍 간 건 아니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 갔는데, 혹시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팀장님) 아;; 아니에요...


 당황하신 팀장님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본청에선 저녁 8시에 퇴근해도 일찍 퇴근한다고 말한다. 늘 다들 늦게 가니깐 ㅠㅠ 그런데 매일 정시 퇴근한 것도 아니고 항상 야근했던 내가 어제 처음으로 퇴근시간도 10분이나 지나 집에 간 건데 '일찍'이란 말이 매우 서운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 나의 미래가 암담하다.


 공무원 조직이 직원 수도 많고 워낙 오래된 조직이고 민간조직과 달라서 상명하복, 층층시하인 군대 시스템이 아니고선 운영이 어렵다는 것도 이해는 된다. 업무처리 시스템은 그렇다 쳐도 금쪽같은 내 시간을 마음대로 침범한다던가, 긴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공무원의 사생활은 당연히 희생돼도 된다는 듯한 쌍팔년도에 있을법한 조직문화를 때면 화가 마구마구 치민다.


  MZ세대에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가 다 포함된다고 한다. 난 1982년에 태어났다. 비록 몇 년 만 일찍 태어났어도 탈락됐겠지만 어쨌든 MZ세대다. 조직 내 부적응자로 찍힐 뻔했는데 웬만하면 그냥 넘기는 'MZ세대'에 포함돼 천만다행이다.


 '요즘 신규들은... 쯧쯧!' 할 때는 기성세대 인 척하고,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어 할 땐 MZ세대라고 하는 난 진짜 샌드위치인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나도 MZ세대에 살짝 붙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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