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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Sep 25. 2023

삐! 10명이 초과됐습니다!

내향인이 이렇게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상황들을 버거워하는 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대뇌의 구조나 호르몬 때문에 외향인에 비해 물리적 에너지 보유량이 적고, 그 때문에 쉽게 무기력해진다. 무기력감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업무 체계가 흐트러지고, 하는 일에 허점이 생기고,
짜증도 쉽게 부리는 것이다.
- 도리스 메르틴, <혼자가 편한 사람들> -

나난 MBTI 유형 중 INFJ에 해당한다. 

검사할 때마다 INFJ와 INTJ가 번갈아 나오는데 INFJ가 더 많이 나온다.

F(사고형)과 T(감정형)은 왔다 갔다 하지만

I(내향), N(직관), T(판단)는 변함없다.


이 중 대인관계에서 눈에 띄는 성향은 I(내향형)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관심과 에너지가 외부로 향하기 때문에 흔히 사교적인 반면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관심과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향적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과의 만남을 싫어하거나 리더십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에너지가 적을 뿐이다. 그래서 외향인에 비해 허용할 수 있는 물리적 양이 적은 것뿐이다. 

하루동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적고,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적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가 고갈되기 전까지 집중력과 사고력의 질이 외향인보다 낮다고 볼 수는 없다.

에너지가 짧기 때문에 내항인에겐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내향인에게는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간이 짧아도 되지만 어쨌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확보 돼야 한다.

휴직 전 회사에 다닐 때는 10분을 휴식하면 반나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10분 동안 혼자 옥상정원을 돌거나 창가를 보며 잠시 멍하게 있거나 시원한 아메리카를 마시며 충전했다.


하지만 충전하는 10분을 확보하지 못한 날이면 오후 근무가 너무 힘들었다.

전화 민원, 직원들끼리의 소통, 상사의 업무지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리 위로 말풍선이 생기면서 경고음과 함께 아래와 같은 문장이 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삐! 10명이 초과 돼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습니다. 잠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을 마주 할 힘이 없습니다.  당신이 싫거나,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에너지가 소진된 것뿐입니다. 잠시 후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의미를 꼭 전달하고 싶었다. 

이런 내용이 적힌 패널을 제작해서 들고 다니고 싶기도 했다.

에너지가 없을 때 부딪힌 사람과 시간만큼 다음날 더 쉬어줘야 됐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고 덕분에 지금은 푹 잘 쉬고 있다.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며 너무 행복한 시간을 갖고 있지만 다시 그곳에 돌아가야 되는 걸 안다.


회사는 돈을 벌러 가는 곳이고, 내 성향과 달리 만나야 되는 사람을 만나고 해야 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매일매일 에너지가 쫙쫙 빨리겠지.

그렇게 평생의 에너지를 다 쓰고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마저 고장 날 때, 내가 완전히 꺼질 것 같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ggy und Marco Lachmann-Anke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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