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나라 구름 위에서 예쁘게 친구 천사들과 놀고 있었는데, 뻥 뚫린 구름을 잘 못 밟아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닐까? 아니면, 지옥에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지옥 도피용으로 이승에서의 삶을 간절히 바래서 태어났을 수도... 아무튼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공감이 안 된다.
출생과 달리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의 얘기이며, 절대로 순리는 아니다.
극히 일부지만, 그들은 왜 죽음의 시기를 앞당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는 위험과, 죗값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죽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복잡하고 힘든 일이 모두 끝날 것 같은 착각.
나의 죽음으로 누군가 깊이 반성하고 후회할 것이라는 헛된 희망.
그냥... 이유조차 댈 수 없을 만큼 삶이 힘들고 지쳐서...
나 역시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자살시도를 많이 하지만, 자살시도 시 성공률은 남성이 더 높다는 통계가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극단적인 자살방법을 쓴다고 한다. 통계처럼, 여고시절 나도 라일락 꽃향기 속에서 아름답게(?) 숨을 멎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꽃향기로 인해 죽으려면... 꽃 구입 비용이 어마하게 들며, 꽤 오랜 시간 밀폐돼야 하는데 언제나 엄마가 들락날락하는 나에겐 애초에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은... 결혼을 결심했을 때다.
당연히 나의 건강이 문제였다.
시댁에선 나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가 장애인이 아닐 것이라는 확인을 병원에서 받아오라고 했다. 아기는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는 신의 영역이고 국가자격증도 아닌데, 증명이 가능한지, 서럽다가 화도 났다가 어디서 알아봐야 되는지 등 여러 가지 생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던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자연분만으로 유명한 곳이라 병원은 그대로 있었다.(그 자연분만 때문에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만...) 30여 년 전의 일을 확인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출산 기록은 남아 있었고 그 자료를 통해 유전이 아니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듯했지만, 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산모 즉, 엄마가 와야 된다고 했다.
가급적 혼자 해결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엄마에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엄마에게 30년 전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내가 지금 시댁에서 저울질당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다. 예민하진 나를 달랜 것도 폭발하여 멈추게 한 것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때때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서 철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 행동의 비수가 이번엔 나를 찌른 것이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려서 병원에 같이 가봐. 그게 무슨 문제가 있어?”라고…그 순간, 나는 그가 진짜 나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맞는지 헷갈렸다. 항상 내 마음을 먼저 알아채고 나를 대변해 줬던 그였다. 집에서 어른들의 걱정을 아무리 많이 들었다고 해도 절대로 나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입 밖으로 해 버린 것이다. 바로 헤어짐을 통보했고, 이별했다.
어른들의 걱정은 당연했다. 내가 둥이를 낳고 보니 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건강한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해도 아픈 아기가 태어 날 수 있고, 부부끼리 싸울 수도 있는데…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함께 책임지겠다는 그가 아니라 책임 소재를 미리 분명히 하겠다는 남자가 낯설었고 서운했다.
모든 것에 배신을 당한 것 같아 열심히 살 이유가 없어진 것 같았다. 사무실, 집 주변 약국을 돌며 감기몸살 약을 한 가득 지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만족할 만큼의 약이 모였다. 반일 휴가를 내고(죽을 거면서 웬 휴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물컵에 물을 따르고 약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약 2~3알, 또 물 한 모금 약 2~3알... 몇 알 먹지도 못했는데 배가 너무 불렀다. 알약을 마구 삼켰어야 됐는데 감기약 먹듯이 착실히 물과 함께 먹었으니 당연히 배가 부를 수밖에 없었다. 물을 삼키는 횟수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게 돼 먼저 넘기 약들이 뱃속에서 제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잠도 오고 몸은 나른해지더니 이 약 저 약 다 섞여서 메스껍고 너무 어지러웠다. 그리고 살짝 잠이 들었다.
"삐리리리~"(휴대폰 벨소리)
"여보세요..."
"xx 씨, 휴가 중에 미안한데 사무실에 일이 생겼는데 좀 일찍 나올 수 있을까?"
"네... 잠시만요..."
어지러운 몸으로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서도 계속 구토를 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 같았는데 사무실 언니가 왔다.
"xx 씨, 사실 주변 약국에 있는 약사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었어. 똑같은 약을 자꾸 사가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고."
알고 보니 약사 선생님이 사무실 직원에게 내가 이상한 것 같다고 얘기했고, 내 상황이 걱정된 언니가 전화를 준 것이었다. 부끄럽고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그 언니는 괜찮다고... 토닥이며 잠시 누워있을 곳을 마련해줬다. 약이 다 나올 때까지 기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죽을 거 같이 어지러운 머리 탓에 결혼, 시댁, 장애...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몸이 아픈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며칠 후, 그 언니는 내게 몇 권의 책을 추천해줬다. 본인이 힘들었을 때 독서치료를 받았었는데 많은 위로가 됐다며 천천히 읽어보라고 했다. 책을 읽으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며칠 동안 멈춰진 시간도 다시 흘렀다.
결국 나를 아프게 했던 남자와 결혼을 해 아이도 낳았다.
심지어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기 위해 운동도 한다. 사람이 너무 간사한 것 같아 부끄럽다.
내게는 둥이가 있으므로, 둥이가 다 자라 제 짝을 만날 때까지 옆에 있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그 누구보다 활기차다. 예전의 나와 다르다.
본인의 선택으로 목숨을 끊으면, 이승에서 마지막 모습 그대로 자신의 남은 생을 살아낸다고 한다. 비 오면 맨몸으로 비를 맞고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 수 없다. 제일 무서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울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만질 수 없고 위로해 줄 수 없게 된다면... 그 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죽음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모르지만, 내가 해야 되는 과업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도록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살 것이다.(혹시나 또다시 태어날까 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