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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Oct 02. 2024

잠시 후 고현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잠시 후 고현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놔두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신 후 배가 완전히 정박한 후 선원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하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여객선을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다영은 안내방송을 듣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배 멀미가 심하기 때문에 무선 이어폰은 그대로 귀에 꽂은 후 이어폰 케이스만 가방에 넣는다. 바닷물의 흔들림이 사라질 때까지 음악이 들려야 안심된다. 다영은 컵홀더에 꽂힌 종이컵을 얼른 빼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를 타기 전 부산에서 샀던 커피. 남은 한 모금을 입에 털은 후 출입구 옆 휴지통에 버린다. 고소한 커피 향과 따뜻함이 사라진 커피를 커피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영은 종이컵이 사라져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벽과 난간을 짚어가며 배 밖으로 나간다. 

 추운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쨍쨍한 햇볕에 눈을 감게 된 다영은 코를 통해 고현을 먼저 감각한다. 짜디 짠 바다내음. 부산과 거제도. 두 도시는 똑같이 바다를 끼고 있지만 각자의 향기는 다르다. 부산의 바다는 감자볶음을 먹을 때 살짝 느껴지는 소금 맛이라면 거제도의 바다는 새우젓갈의 뚜렷한 짠맛이다. 이십 년, 그보다 좀 더 오랜만에 맡아보는 거제도의 짠내. 소금을 가득 품어 끈적한 바람을 느끼며 다영은 선착장으로 나간다. 

 거제도, 고현항에 도착했는데 이제 난 뭘 하면 될까? 다영은 가방을 열어 다이어리를 꺼낸다. 다이어리 중간에 구겨진 채 숨겨놓은 메모지를 펼친다. 오랫동안 되뇌어 이미 암기하고 있는 주소. 외우고 있는 것과 한번 더 확인한 후 메모지를 다시 구겨 넣는다. 이제 곳 메모지에 적힌 주소에 도착할 수 있는데. 아니, 정말 갈 수 있을까. 간다고 하면 은수를 만날 수 있을까. 목적지를 앞에 두고선 소심함에 발이 묶인 다영. 다영은 애꿎은 자신의 발 끝만 바라보다 꿈에서 깬다. 

  오늘도 고현항을 헤매던 꿈을 꾸다니. 심지어 꿈에서 맡은 바다냄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고현에 내려 특유의 짠내를 코로 들이마 쉬는, 선착장에서 멈춰버리는 꿈을 다영은 최근에 자주 꿨다. 고현에 남기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단지, 남겨진 사람이 있을 뿐. 은수. 하지만 은수가 고현에 계속 살고 있다는 확신은 없다. 강물의 흐름과 산도 변한다는 십 년의 시간이 두 번이나 흘렀기 때문이다. 거제도에 다시 가야겠다고 결심한 다영은 부산과 거제도를 운항하는 항로가 2011년에 폐지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거가대교 개통으로 항로가 폐지됐다고. 

 10년도 더 전에 폐지된 항로를 다영은 뒤늦게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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