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영은 자리로 돌아와 창문 밖을 바라봤다. 더 이상 다영이 해야 될 것은 없었다. 커피와 초콜릿케이크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휴가를 냈고, 거제도로 넘어왔고, 은수가 운영하는 태권도장 앞까지 왔다. 다영은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닫자 피곤함을 느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하루였다. 왜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였는지, 뭘 하려고 했던 건지, 하고 싶었던 게 뭐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은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만나도 될까? 자신을 반가워할까,라는 고민을 하던 중 테이블에 커피와 케이크가 놓였다. 사장님은 주문하신 아메리카노와 쵸코케이크 나왔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사라졌다. 뜨거운 커피를 입으로 호호 불었다. 다영은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했다. 뜨거운 것을 잘 먹어야지 인복이 많다는 말을 듣고 참고 먹으려던 적도 있지만 무리였다. 노력해서 복을 만들 수는 없는가 보다,라며 테이블에 내려놓는 커피를 다시 들어 제 입으로 후후 불어 식혀주던 은수가 더 올랐다.
아이들 소리로 창밖이 시끄러워졌다. 봉고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우르르 건물 속으로 들어가고 건물에서 나온 아이들은 봉고차로 들어갔다. 건물과 아이들을 교환한 봉고차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깐의 혼란동안 은수는 보이지 않았고 다영은 다행이라고 느꼈다. 대책 없이 떠난 여행을 은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의 거제도 여행 목적이 은수를 만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낯선 곳에 혼자 있고 싶었는데 그곳이 전혀 낯선 곳이 아니길 바랐을 뿐이다. 조금은 익숙한 공간에서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싶었을 뿐이다. 좀 전보다 아이들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매 시간 아이들이 저렇게 많은 것일까, 그러면 한 달 수입이 꽤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함께 은수가 내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한 달에 오백만 원만 벌면 되는 거야?"
"응. 이것저것 다 빼고 생활비로 오백만 원 나한테 줄 수 있으면 너랑 결혼해 줄게."
"오백만 원 내가 꼭 번다. 지켜봐 줘."
다영에게 오백만 원이 가장 큰돈으로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인기 있었던 미니시리즈 여주인공은 자신이 맞선 본 남자가 연봉이 3600만 원이라며 자랑했고 난 그 금액을 부러워했었다. 당시 아빠의 한 달 월급은 25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에 백만 원을 더 보태기 위해 마트에서 캐셔를 했던 엄마. 다영은 한 달에 오백만 원이면 행복하고 풍요로운 가정생활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은수는 그런 다영에게 오백만 원을 조건으로 한 프러포즈를 장난 삼아 자주 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