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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Oct 27. 2024

오늘도 살아남았다.

 복직 후 알게 된 언니가 며칠 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생각보다 심각했는지 의사는 언니에게 바로 휴직을 권유했다고.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당차고 씩씩하고 긍정정인 언니였는데. 언니도 속이 곪아 있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해 질문했다. 발령이 나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은 말들 즉, 소문들이 나보다 먼저 새로운 부서의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조직사회라면 있는 일이니까. 우울증으로 휴직했데, 일하다가 두 번 기절했다더라. 소심한 나는 쓸데없이 이런 부분에만 쿨하다. '네, 약 먹고 있어요.'라고 순순히 대답한다. 그래서 같은 부서 사람 중 나의 우울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도파민 등 뇌의 신경물질 부족 등으로 인한 뇌질환일 뿐이니까 숨길 이유가 내겐 전혀 없다. 

 나는 며칠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언니에게 묻는다.

  "약 처방은 받았어요?"

  "아니, 약 먹긴 좀 무서워서. 다음 주에 상담과 검사를 추가로 진행한 후에 다시 의논해 보려고. 근데 약 먹으면 좀 괜찮아?'

  "음...... 일단, 당장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줄어들죠."

  "아, 넌 심하구나. 미안해."


 어색하게 끝난 대화. 하지만 언니에게 내가 한 말은 거짓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매일 하니까.

 몸이 온전하지 않은 내가 엄마가 됐고 내가 낳은 아들의 지적 능력이 떨어진 다는 것을 알았을 때. 멍한 상태에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그래, 이제 내가 정말 죽을 때가 됐구나.'였다. 항상 살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그럴듯한 '핑계'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결국 둥이도 언젠가 나 같은 생각에 휩싸일 것 같다는 것이다. 몇십 년 후 둥이가 결국 이런 생각에 휩싸인다면 노력해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아들과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친정엄마가 살아계시니까. 나에게 내 아들 둥이가 소중하듯, 엄마에겐 내가 그런 존재일 테니. 그래서 아직은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살아야 되므로 사는 거지 죽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위험한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주 금요일, 퇴근 후 집에 오니 저녁 9시였다. 피곤한 몸을 소파에 던진 채 쉬고 있는데 둥이의 짜증 섞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초지종을 듣거나 위로할 힘이 전혀 없었던 나는 가만히 둥이를 바라봤다. 가만히,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다시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 내가 지금 슬픈 것처럼 둥이도 슬픈 걸 꺼야. 우리 이렇게 슬프게 살 이유가 있을까? 위험해질 것 같은 순간! 나는 둥이에게 말했다.

  "둥아, 일단 양치하고 씻고 와봐. 둥이 씻고 나오면 엄마도 씻을게. 우리 침대에 누워서 얘기할까?"

 둥이는 울면서 화장실로 향한다. 나는 며칠간 야근으로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우울증 약과 뇌영양제, 섬유근육통 완화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을 꿀꺽꿀꺽 삼키고 나자 '이제 됐다, 둥이와 내가 다시 안전해졌다'라는 안도가 들었다. 그렇게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둥이와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다가오는 수요일, 신경과와 신경외과, 정신건강과 외래진료가 있어서 하루 휴가를 냈다. 하루종일 대학병원에서 대기, 진료, 검사를 반복하면 몸에서 에너지가 쫙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둥이와 나는 계속 살아남아야 되므로 병원을 가고 진료를 받아 약을 처방받고 꾸준히 약을 복용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시간을 하루, 이틀 모아서 둥이와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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