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가 점례 딸 장미냐?

by 장미

싱그러운 5월 새벽 새벽 4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첫째 남동생이었다.

“누나.”

남동생은 다음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연로한 부모님을 둔 자식들의 공통점이다.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엄마? 엄마지?”

“누나.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어.”

가슴이 내려앉았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으니 지금 이 순간 그 일이 닥쳤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비로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서는 눈물 보이지 않고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는데도 주체햘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고 있을 터였다. 어느 별을 향해 날아가든지 이 지구에서 너무 먼 별이 아니기를 바랐다. 덮어버린 책 나의 그녀를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펼쳐보고 싶어 하던 나를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들키고 싶었다.


누구의 엄마일 뿐이었던 그녀가 세상을 떠나 어느 별인가로 향하고 있었다.





“경비원 아저씨가 그러더라고. 새벽 네 시쯤인가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놀라 나가 봤더니......”

남동생이 말끝을 흐리며 흐느꼈다. 그녀는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것이었다. 싱그러운 5월 새벽을 더는 이 별에서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온몸으로 말한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보다 2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친가 쪽 분들은 어려서부터 가끔 인사를 드리곤 한 데다 서울에 사시는 분들이 많아 오십 줄에 접어든 나를 금세 알아보셨다.

“아이고 장미로구나. 젊었을 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네.”


반면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가 세상 떴다는 소식에 시골에서 부랴부랴 올라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언니인 동시에 친구였던 한쪽 눈만 남은 이모는 나이 먹은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서럽게 울었다. 울지 않으려 결심하고 있던 나도 이모의 울음 속에 내 울음을 섞었다. 한바탕 통곡이 회오리치듯 지나갔다.




"아이고, 니가 점례 딸 장미냐? 참말로 점례 딸 장미 맞냐?"

“점례가 시상 뜬께 내가 서울 구경을 다 해 본다야.”

“좋은 시상인디 고생만 하다 갔네, 우리 점례.”

“너 같은 딸을 두고 믓이 바쁘다고 이라고 일찍 갔다냐. 불쌍한 우리 성.”


그녀가 세상을 스스로 버렸다는 말은 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버렸다는 소식은 전염병보다 더 빨리 퍼졌다. 외숙모와 이모들이 하는 말속에서 그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이미 다 알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9988234. 그녀는 99세까지 살지는 않았으나 허리가 약간 굽기는 했어도 팔팔하게 살기는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2~3일 앓아누워 헤어질 준비를 하도록 말미를 주는 것은 뒤에 남은 이들의 바람이 되고 말았다.

“우리 점례가 살 시상을 살았다냐?”

“그랑께 말이요. 오살 맞을 그놈의 전쟁 땀시......”

그녀들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에 대해 어제 이야기를 하듯 판을 벌렸다. 듣다 보니 그녀가 장미 엄마란 이름을 갖기 전 이야기들이었다.


“아이고, 반은 미쳐 부렀제. 그런 상황에서 우덜 누군들 안 미치고 배겠겄소.”

“그라제. 그라제. 불쌍타, 우리 점례."”

“너럭바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것만도 멫 번이었제. 남동생들 아니었으면 폴쎄 갔을 것이요.”

“오메오메. 새끼들 생각해서 그랬등가 목포 가서 애기들 옷 띠어다가 동네방네 돌아댕김서 안 폴았소.”

“그랬겄제. 새끼들한테 못 해준 것만 생각났을 것 아닌가.”

"해마다 한 살씩 더 묵는 새끼들한테 맞을 것 같은 옷을 잘도 골라왔어라우."

“분홍색을 벨나게도 많이 갖고 댕겠어야. 옷이랑 리봉 같은 것들이 거지반 분홍색이었응께. 신발도 이쁜 것들로만 골라 갖고 왔드라.”

"가이나가 둘잉께 그랬겄제."





이야기가 그녀 젊었던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모들과 외숙모는 누가 듣는지는 마음 쓸 겨를도 없이 그녀의 지난 어느 지점에 모여 이야기를 쏟아냈다.

“으째 안 그랬겄능가. 생때같은 새끼 둘을 그 염병할 새끼들 손에 냉기고 사람이 으치게 안 미치겄능가.”

“삼춘들이 안 따라갔드라믄 아조 그때 그 자리서 시상 베레 부렀을 것이요.”


지금껏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그녀는 장미 엄마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버리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그러자 내 이름 앞에 그녀의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점례 딸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