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점례 씨의 시어머니

by 장미

할아버지는 일 년에 두어 번 서울에 올라오시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늘 한복 차림이었다. 전체적인 한복 색은 뚜렷하지 않지만 하늘색 두루마기만은 기억에 선명하다. 할아버지가 올라오시는 날이면 엄마는 할아버지와 나를 위한 겸상을 준비했다. 저편에선 아버지와 엄마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할아버지와 나는 따로 앉아 식사를 했다. 아이는 누구나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없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마주 앉곤 했다


할아버지와의 겸상은 대체로 너는 인동 장 씨 **파 몇 대손이라는 데서 시작했다. 밥 두 술에 반찬 한 번, 입에 들어간 밥은 서른 번은 씹은 후 삼켜야 하고 밥 먹는 중에 물은 마시지 않아야 한다. 남녘 음식이 김치도 간간한 데다 젓갈 음식이 많아 짜게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구체적인 부분까지 세세하게 알려 주신 것일 게다.





초등학교 2학년 이른 봄 어느 새벽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누군가 밖에서 아이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이틀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이후 할아버지와 나의 겸상은 어느 심연쯤 깊고 짙은 음각으로만 남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홉 살 이전 아이의 기억에는 없던 할머니와 고모 두 분이 올라와 함께 살게 되었다. 방 두 칸의 서울 집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고기잡이 나가셨던 할아버지는 풍랑에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못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할머니를 통해 처음 들었다. 할머니는 자주 아이가 듣기에도 구슬픈 가락에 무슨 가사인가를 붙여 흥얼거리곤 하셨다.


콧구멍만 한 텃밭에 자라는 고추나 가지, 오이 몇 포기 돌보는 것으로는 쉰아홉 할머니의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몇 권을 써도 모자란다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다름없이 글 모르는 할머니의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씩잖한 년, 한나 달고 나오제 그랬냐."


할머니가 당신의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아이는 그 유쾌하지 못한 기분의 표적이 되곤 했다. 할머니의 그 말은 남아선호 사상의 직접적이고도 직설적인 표현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놀라움보다는 어떻게 대거리를 해야 할지 몰라 온몸의 미세한 솜털까지 분노로 부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그 말은 나의 자존감을 짓이기는 한편 삶의 일정 부분을 튀어 오르는 공처럼 결코 쓰러지지 않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 말은 동시에 할머니가 적어도 할아버지만큼 아이를 이뻐하지도 아끼지도 않는 사람임을 실토하는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이러저러하게 하면 좋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는 할머니의 '씩잖한 년'과 '한나 달고 나오지 그랬냐'에 대해 온몸의 솜털을 가시처럼 세워 할머니를 싫어하는 티를 냈다. 할머니 말에 대놓고 토를 단다거나 바늘귀 안 보인다는 할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처량한 노래나 혼잣말을 들을 때면 그 감정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할머니의 '하나 달고 나오지'란 말에는 어쩌면 아이가 할머니처럼 즐겁지 않은 삶을 살게 될까 하는 걱정이 사려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깊은 데까지 느끼기에 나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서울 올라올 것도 아니고 안 올라올 것도 아닝께 기양 고향이나 지키고 살 것을 믄 뾰족한 수 있다고 똥구녕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아들을 따라왔을 것이냐, 믓하러....."





흐려진 말 끄트머리에 이어질 말이 어떤 것인지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할머니의 이야기들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첫 생리를 마친 여름 방학이 되자 조금 더 세밀한 것이 되어 있었다. 일하러 나간 엄마 대신 아이의 서답을 빨아주던 할머니는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느그 아부지 첫 마누라 년은 얼굴도 흐가고 아조 곱게 생겠었다. 그란디 지사 지내러 친정 간다고 가드만 안 와 불드라. 둘째 마누라 년은 아들 새끼 한나 낳았는디 그 년도 글씨 친정 가서 안 와 부렀어야. 맥 읎는 년들. 그라고 느그 어매가 왔제.“


느그 아부지 첫 마누라 년이라는 말은 그 며느리가 당신과는 무관하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말이었다. 할머니가 당신의 며느리들에 대해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말을 하는 데는 할머니가 며느리들을 결코 살갑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단적인 증거였다. 그러니 할머니의 세 번째 며느리인 내 엄마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않아도 뻔할 터였다. 할머니는 내 엄마에 대해 한 번도 좋은 말을 했던 적이 없다. 그것은 땔감을 마구 처넣은 아궁이 입구를 거꾸로 빠져나오는 눈뜨기 힘들 만큼의 매운 연기였다.


나는 할머니의 장미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보다 더 여러 번 들었다. 할머니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음에도 심심할 때마다 조르면 흘러나오는 단물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첨가되거나 생략되지 않은 채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다. 엄마 얼굴에서는 가늘게 떨리던 미소조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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