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막내 외삼촌

by 장미

외숙모들과 이모들 사이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막내 외삼촌이 들어왔다. 외숙모와 이모들은 입을 다물었다.

"올라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누워서들 좀 쉬세요."


외삼촌이 넓은 방 한쪽 구석에 가서 모로 누웠다. 외숙모와 이모들도 눈짓을 주고받으며 자리를 찾아 누웠다. 잠시 후 외삼촌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눈이 외삼촌의 뒷모습에 고정되었다.

"으째 천불이 안 나겄는가. 누나 살아온 시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아닌가."

다시 땅이 꺼질 듯한 한숨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휘감았다.





막내 외삼촌은 목포에서 외숙모와 함께 예식장과 미장원을 운영했다. 목포에 갈 적이면 막내 외삼촌 댁에 들러 하룻밤 묵곤 했다. 막내 외삼촌은 말없이 외숙모의 미장원 일을 도왔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기도 하고 미용재료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 집이 재개발 대상이 되면서 막내 외삼촌네는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막내 외삼촌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외숙모가 운영하는 예식장과 미장원 일을 도왔다. 요즘에야 남자 주부도 많이 늘었고 드라마에도 종종 등장하지만 1970년대엔 많이 낯선 풍경 중 하나였다. 내가 보는 한 외삼촌들은 천성인 듯 말도 행동도 느렸다. 그 모습은 매사 빨리 결정하고 행동하는 우리 집에서는 약간의 자신감 결여로 비치기도 했다.


한 번은 하굣길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막내 외삼촌과 마주쳤던 적이 있다. 외삼촌은 선뜻 지갑을 열어 오만 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나는 막내 외삼촌이 건네는 돈을 사양하지 않고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어 받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 사실을 전하지 않고 사고 싶은 책을 사는 데 다 써 버렸다. 며칠 후 엄마가 물었다.


"막내 외삼촌이 5만 원이나 줬다고 하드만?"

"응. 책 샀어."

"엄마한테 말이라도 하고 썼어야제. 외삼촌한테 고맙다고 내가 몬자 말했어야 하는디 외삼촌이 물어도 츰에는 믄 소린가 했다. 그라믄 못 쓴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막내 외삼촌이 내게 건넨 그 5만 원은 책을 사는 데 써도 좋았지만 일부라도 자신의 누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던 돈이었음을 말이다.


그녀에게는 남자 형제가 셋 있었다. 둘째 외삼촌은 벌써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첫째 외삼촌도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제 장미 엄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해 줄 사람은 막내 외삼촌뿐이었다.





"외삼촌."

외삼촌이 한 계단에 발을 올려놓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냐, 으째 나왔냐? 너도 피곤할 텐데 이모들하고 좀 쉬지."

"그냥요."


장례식장에서 밖으로 나오니 서녘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중이었다. 너른 주차장에 드문드문 서 있는 자동차들. 그녀는 우리가 자동차를 구입한 후 몇 번은 우리 차를 타고 함께 그녀의 텃밭에도 갔고 내 텃밭에도 갔었다. 그러나 먼 데 여행은 한 번도 같이 가지 못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외삼촌이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그녀처럼 닦아주었다. 투박하지만 살결은 부드러웠던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기억 속 그녀의 손이 외삼촌의 손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울지 마라. 이미 가버린 분이다."


그렇게 외삼촌과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해의 잔여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윽고 내가 입을 열었다.

"외삼촌."

"오냐, 말해 봐라."

내가 그녀를 불렀을 때도 그녀는 '오냐, 말해 봐라.‘ 하며 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려 주었다. 이런 말투 역시 내력인 모양이었다.

"엄마에 대해 외삼촌께 여쭤볼 게 있어서요."

"누님에 대해서?'

"네."

"내가 아는 한은 다 말해 주마."





"언젠가 엄마한테 몇 살에 시집갔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열아홉에 시집을 갔다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어요. ‘그런데 나하고 엄마 나이 차가 스물아홉이나 나네. 애기가 잘 안 생겼어?’ 하구요. 엄마 얼굴에서 다른 기색을 읽지는 못했지만 엄마는 더 이상의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어요. 아무리 내 엄마지만 어린 딸인 내게 말하기 힘든 어떤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했죠. 그 이상은 엄마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죠. 엄마가 이렇게 가 버리고 나니 엄마가 말할 기회를 한 번 아니라 열 번이라도 마련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지금 많이 혼란스럽고 후회스러워요."


"오냐오냐. 괜찮다, 나한테 물어봐라. 누님 입으로 누님 힘들었던 날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었겠냐. 니가 남이라도 털어놓기 힘들 일인데 너는 딸 아니냐? 누님이 그러시드라. '우리 장미만 안 생겼더라면...' 하시면서 얼마나 우셨는지 모른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매형이 보통 분은 아니셨잖냐. 강직하다 못해 부러지시는 분이셨지."


"맞아요, 외삼촌. 아버지는 조금 일찍 태어나셨더라면 독립투사가 되고도 남으셨을 분이죠. 저한테도 늘 여자라고 할 말 못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죠. 그러시면서도 당신 부인인 엄마한테는 왜 그렇게 입을 틀어막으려 하셨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요."

"그러게 말이다. 누님이야 그러려니 하고 사셨던 게지."

"그러려니 하고 산 그 까닭이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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