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휴대용 위스키병에 순위를 내주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끼고 사는 것도 삶의 일부분인가 싶다. 버리고 나니 공간도 넓어졌고 손을 댄 자리답게 깔끔하다. 하지만 버리고 나면 며칠 못 가 그 버린 것을 어디 뒀더라 찾는 일이 생기곤 한다. 경험상 적어도 한두 달 안에는 그 별것 아닌 것들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곤 했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한구석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있고 망설임 끝에 결국은 분리수거함으로 향하는 것도 있다. 특별한 기준이 있어 다시 챙겨 넣거나 버려지는 게 아니다. 순전히 망설이는 순간 손의 방향에 따른 것일 뿐이다. 내 손의 순간의 선택에 따라 어떤 물건이 나와 완전히 결별할 수도 있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요즘 들어 특히 순간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졌다기보다는 지난 선택들에 대해 곱씹어 보는 기회가 늘었다고 함이 옳다. 세상에 태어난 것 외에는 모두가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들을 거의 순응하며 지내온 내가 거기 있다. 인간이란 그래야 한다는 어떤 논거도 없이 삶이 권하는 대로 주변에서 좋다면 그런가 보다 하며 좋다는 쪽을 따랐었다.


과감하게 내 의견대로 했더라도 괜찮았을 어떤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내 의견대로 했더라면 나는 지금 여기 있을까? 결론은 그랬더라도 나는 지금 여기 있을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갔더라도 나는 결국 여기 이 자리에 닿아 있을 것이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이 달랐을 뿐이리라.





주방 정리를 하며 버린 것이 약간 부풀리면 소형 트럭 하나 분은 될 것 같다. 박스에 담긴 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접시 몇 개는 박스째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차 한 잔 나눌 시간을 1년 넘게 자제하고 있으니 전화 한 통화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다는 목소리다.


주방 정리에 이어 선반 정리로 들어갔다. 선반 정리 중에 휴대용 위스키 병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숨겨 두었음에 분명하다. 일 년에 대여섯 개 사용할까 말까 하는 종이컵 뒤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등장했다


20210428_071615(1)[1].jpg



술 즐기는 남편과 술로 인해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이 바람결처럼 스쳐갔다. 이 위스키 병은 등산을 갈 때면 들고 다니던 병이다. 술과 담배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한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은 서글프게 세상을 마감한 탤런트 고 최진실 씨의 말을 인용해 내게 스트레스를 주곤 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나. 내 남편이 술 담배를 끊지 못함은 아내인 나의 탓이라는 말이다.


돌아보면 그까짓 말이 별거냐 싶기도 하다. 지금보다 많이 젊었던 당시엔 말하는 입장에서는 우스개 섞어 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평소 다른 사람에 대해 얄궂게 말하기 좋아하는 그녀가 나를 깎아내릴 심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터이니 지금 생각해도 별것 아닌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자신의 남편 금연과 금주를 성공시켰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가 원하는 금연과 금주는 별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 남편의 아내 사랑은 내 남편의 아내 사랑으로는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비교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다지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자신과 비교하며 스스로 우월감에 빠져 나를 고소해하는 듯한 그 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남편이 술을 끊고 담배를 끊는 게 아내 하기 나름인 것일까? 지금도 의문이긴 하다. 이 말이 맞는다면 세상 모든 남편들은, 아니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남자들 중 술 담배를 즐기는 이라면 어떤 남자라도 여자가 원한다면 금주와 금연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정작 여성 자신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은 그 질과 차원에서 다르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무슨 사랑 타령을 하느냔 말이다.





남편 물건이니 남편에게 물어보고 버리는 게 맞겠다 싶어 챙겨 두었다. 대충 주방 세제로 닦았는데도 때깔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펄쩍 뛴다.


20210502_062028(1)[1].jpg


"이걸 왜 버려?"

순간 발동하는 장난기, 병을 등 뒤로 숨겼다.

"발견한 사람에게 어떤 보상을 하실 건지?"

"보상은? 이거 내 건데 당신이 감춰버린 거잖아."


역시 술과 관련한 한 모든 것은 아내인 내 위에 두는 사람이다. 여자 하기 나름인 남자가 절대 아니다. 옛일을 생각하며 남편과 아웅다웅하기에는 내가 많이 너그러워졌다. 남편에게 부디 건강에 무리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길 부탁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지만 남편에게 술은 아내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실감하면서 말이다.





남편의 주량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남편에게서 자주 아버지가 보인다.


호랑이 같았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턴가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셨을 때,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고 더 큰소리로 호통을 치실 때, 그러나 그 호통마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입을 다물어 버리실 때...... 건장했던 아버지 팔에 매달려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남편 또한 딸들에게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정리란 눈에 보이는 물건 정리만 하는 게 아니다. 주방과 선반 정리를 하면서 내 마음도 쓸고 닦고 버릴 건 버리고 있는 중이다. 먼지 폴폴 날리는 이 정리 시간도 그런대로 쓸 만하게 보내자면 쓸데없는 생각은 싹을 끊어내 버리는 게 맞다.




keyword
이전 06화술은 박스가 먹고 깨진 병이 왔다